090328_감성의분할_자크 랑시에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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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의 분할
1. 감성의 분할에 대하여 그리고 그것이 정치와 미학 사이에 정립하는 관계들에 대하여
2. 예술 체제들에 대하여 그리고 모더니티 개념의 결점에 대하여
3. 기계 예술들에 대하여 그리고 익명인들의 미학적, 과학적 지위 향상에 대하여
4. 역사는 허구라고 결론지어야 한다면, 허구의 양식들에 대하여
5. 예술에 대하여 그리고 노동에 대하여, 어떤 방식으로 예술 실천들이 다른 실천들에
관하여 예외에 속하는지, 그렇지 않은지
정치화된 예술의 동시적 이중 효과
역사적, 해석학적 방법론
보편성, 역사성, 평등
실정적 모순
정치화된 예술
슬라보예 지젝의 발문
랑시에르의 교훈
실정적 모순
Q1. 통합(몸)과 해체(영혼)사이의 모순이 근대 문학과 평등주의적 민주주의에 결정적이었던 이유는?
A1. 말은 몸 또는 몸 상태에 의해 보장될 때 통합되고 말을 지지하는 유일한 물질성이 제 자신의 것일 때 해체된다.
19세기 문학의 핵심은 통합과 해체의 모순에 있다. '사회적' 위계 붕괴와 함께 문학에서는 단어, 느낌, 위치 사이의 전통적 표현관계들도 붕괴되어 더 이상 고매하거나 저열한 주제나 단어는 없어진다. 단어의 배치는 문법의 질서에 의해 보장되지 않고 한없이 무차별적인 자유로운 단어의 평등주의로 변한다.
.발자크-발자크가 말하는 것은 사물 그 자체다. 운명의 진로는 한 개인에 의해 닳아 해진 옷(사물)에 씌어있다.
'만물은 말한다(노발리스)'-문학으로 해독, 전개, 재생시켜 글쓰기를 통해 새로운 몸을 세운다.
19세기에는 부정적으로, 민주주의/개인주의/프로테스탄티즘/혁명/사회적 붕괴 사이의 공상적 상관관계, 사회체의 민주주의적 해산(플라톤적 패러다임)이 만연해진다. 이로 인해 무차별적 평등의 지배와 공동체적 몸의 새로운 의미의 대립관계가 형성되며 문학은 이것이 표현되는 특권적 장소다. 발자크<마을사제>에서 이러한 긴장을 연구했다.(*생-시몽주의 등가물)
.말라르메- (동전, 신문 속 단어, 투표지의 표)단순한 평등을 보충할 상징주의적 경제를 시적 기능과 동일시하려고 노력했다.
.랭보- 오감 모두에 접근할 수 있는 새로운 언어로 표현된, 공동체에 대한 새로운 노래를 세공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새로운 몸을 구성하는데 사용된 '언어의 연금술'에는 부모 없는 글쓰기의 잡동사니(학교에서 가르치는 라티어로 된 책들, 시시한 반복구들, 철자 오류들이 있는 작은 성애(性愛) 서적들..) 만 있더라..
Q2. 19세기를 지배한 이러한 논리(통합과 해체의 모순)를 벗어나는 작가들이 있는가?
역사의 사회적 동력 또는 다수의 문학적, 예술적 실천들을 희생시켜 통합과 해체 사이의 결정적인 해결이 없는 변증법적 역사에 '부정변증법의 특권을 부여'하려 한다는 취지를 비판한 것에 대해 어떻게 대응하겠는가?
A2. 그것은 모두 '부정 볍증법'이라고 불리는 것에 달려있다. 내가 사유하려고 하는 것은 오히려 실정적 모순이다.
문학은 이러한 대립되는 두 가지 논리들(결과적으로 단어에 있어 어떤 보증도 가지지 않는 해체와 해산의 논리 Vs 글쓰기를 위해 새로운 몸을 정립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 해석학의 논리)사이의 긴장으로 구성된다. 이러한 긴장은 활기를 띄게 하는 작품의 원리다.
이러한 긴장을 벗어나는 작가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동일한 긴장이 이어지는 비-프랑스작가들이 있다.
․ 버지니아울프-우연성을 제거하는 어떤 말을 향한 긴장
․ 조이스-신화의 필연성 같은 언어의 필연성을 향한 상승과 동시에 끝없는 정형적 문구들의 커다란 층이 있음
․ 파베세-서민적, 소시민계급의 등장인물들의 존재방식에 잘 맞는 사실주의적 언어와 병렬적인 문체, 미니멀리즘의 한계에 있는 모더니즘이 있음.
Q3. 성서와 근대 문학의 어떤 모순적 이웃관계를 발견하는가.
A3. <단어들의 살(아우어바우-복음주의적 이야기의 수직성을 호메로스적 기술의 수평성에 대조시킴)>에 등장하는 방주에서 아우어바우의 소설적 사실주의의 본원적인 모델(위대한 신비로움에 사로잡힌 서민)인 베드로의 부인이 비극적 사건을 생생하게 묘사된다.
나는 이러한 생생한 묘사가 글쓰는 기계 같다고 주장하는 바다. 이것은 개인의 사건이라기보다는 (복음서의 다른 에피소드와 같이) 구약성서에서 예언되어진 것을 신약성서와 연결하는 문제다.
정치화된 예술
Q1. 몇몇 예외들을 제외하면 당신은 사회참여를 피한다.
당신은 (예술을 위한)예술과 사회적 현실 사이에서 사회참여를 전제로 삼는 잘못된 이분법 때문에 피하는가?
사회참여가 자발적인 것과 비자발적인 것, 개인과 사회 사이에 있어 지나치게 단순한 구별에 근거하기 때문인가?
A1. 미학이나 정치적 개념에서 중간개념이란 것은 무의미하다.
예술가는 자신의 인격을 통해 사회, 정치 문제에 참여한다고 할 수 있고 경우에 따라 정치적 투쟁에 공동으로 협력하는 자신의 글, 그림, 영화 등의 수단으로 참여한다. 하지만 예술가의 ‘예술’이 참여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미학이 제 자신의 정치, 또는 스스로 메타-정치(사회적 현실이라는 진리로부터 권리와 대의제도라는 의심스러운 허위들을 분리시키는 거리에 대한 비판)를 갖는다는 것이다. 예술작품은 조형적, 서술적, 글쓰기의 가능성들로 등록되는 객관적 정치들의 조합으로 만들어진다. 조정원리에 따라 어느 일정한 방법들이 다른 방법들 대신 선택되게 된다. 여기서 문제는 주제를 표현하는데 조정은 미학적 예술체제가 이미 이의를 제기했던 재현적전통의 원리라는 것이다. 그것은 미학적 가치와 정치적 가치 사이의 일치를 정립하기 위한 기준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조정의) 선택들만 있을 뿐이다.
도스패소스-해체된 현실, 딕스그로츠 - 인간적, 비인간적현실의 재현으로 유희함.
시미노<디어헌터>- 전쟁에 대한, 전쟁에 맞서는 투쟁에 대한 조롱의 메시지.
레미제라블- 등장인물에 신화적 차원을 주는 근대 서사시 형태의 사회적인 이야기..
문제는 미학의 정치와 정치의 미학사이의 알맞은 상관과계를 정립하기 위한 기준이 없다는 것이다.
어떤 방식으로든 정치는 제 미학이 있고 미학은 제 정치가 있다.
Q2. 이는 예술작품들의 정치적 효과에 관한 판단이 항상 그 사회나 역사적 상황에 고정된다는 것을 말하는가?
그러면 당신이 앞서 제안한 역사의 범위를 넘어서는 관점이 없는 것처럼 예술적 형태와 정치적 의미 사이의 일정한 연결을 정립하는 일반 법칙은 없는가?
A2. 소설, 영화, 조형작업에서 예술의 정치화를 끌어내는 것이 얼마든지 가능하다. ‘정치화된’ 예술의 원형적 형태인 브레이트의 희곡> 정치적 교수법형태들과 예술적 모더니즘 형태들 사이의 극단적으로 복합적이고 교묘한 평형상태의 토대위에 구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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