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0613_잔혹연극론_앙토넹 아르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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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문-연극과 문화
2. 연극과 페스트
3. 연출과 형이상학
4. 연금술적 연극
5. 발리 연극에 관해서
6. 동양 연극과 서양연극
7. 걸작품과 결별하기
8. 연극과 잔혹성
9. 잔혹연극-첫번째 선언문
10. 잔혹성에 관한 편지들
11. 언어에 관한 편지들
12. 잔혼연극- 두번째 선언문
13. 감성운동
14. 두 개의 노트들
Ⅰ. 서문 - 연극과 문화
문명의 발생과 동시에 문화도 마찬가지로 만들어진 체제와 제도아래 자리 잡았다. 지금의 문화는 현재의 붕괴된 체제아래의 죽은 형태의 *이념으로만 남아 인간과 단절되어 있다. 문명인은 행위에서 생각을 이끌어내는 능력이 부조리한 상태로 삶에의 정열과 항구적 마술성이 결여되어 있다. 신성으로 남아야할 삶의 이념은 무기력 속에 그 생명을 잃었고 우리는 습관처럼 그것을 넋 놓고 바라보는 것으로 우리의 역할을 한정짓는다.
문화는 삶이 분리되어있거나 혹은 진정한 문화가 삶을 이해하고 실천하는 데에 하나의 세련된 수단이 될 수는 없다. 반면 정신투사에만 목표를 둔 서구적 예술이념은 진정한 문화의 상실을 조장하고 열광에 참여하는 힘을 약화시켰다. 조직화된 문명아래의 예술과 문화의 보편화, 규칙 등은 이념의 생명력 박물관에 잠들게 했다.
진정한 문화는 열광과 힘에 의해 움직이는 문화이고 그 열광에 참여하는 것이 예술의 이상이다. 또 진정한 문화는 그것을 이중으로 겹쳐놓은 것과 같은 *그림자(힘)을 가지고 있다. 진정한 연극도 그것을 소유하고 있다. 연극은 모든 언어, 모든 예술 가운데 예술의 한계를 파괴시키는 그림자를 가지고 있는 유일한 장르이다. 연극은 스스로 움직이고 살아있는 매개물들을 이용하기 때문에 삶을 뒤흔드는 그림자들을 열광시키는 작용을 끊임없이 지속한다. 배우는 형태들을 난폭하게하고 그것을 파괴시켜 사라짐과 동시에 새로이 탄생되는 형태들과 그대로 존속하는 형태들을 합류시킨다.
연극은 영혼이 스스로의 표현을 생산하는 데에 필요한 단계에 이르기까지 어떤 정확한 상태로 나아간다. 이것은 인간의 습관화된 한계들, 인간적 능력의 한계들을 뛰어넘도록 이끌며, 소위 현실이라고 불리는 것의 경계를 넘어 무한대로 발전하게 만든다.
우리는 연극에 의해 새로워진 삶의 의미를 믿어야한다. 그러면 어떤 두려움도 없이 아직 존재하지 않는 것을 지배할 수 있는 자로 되돌아갈 수 있다. 또 삶이란 우리의 눈을 통해 인지되는 삶이 아니라 형태를 벗어나 일종의 파괴하기 쉬우면서도 살아 움직이고 있는 불씨라는 사실을 간파해야한다. (*그림자 = 힘, 상징 *이념 = 철학, 신념, 사상)
Ⅱ. 연극과 페스트
페스트는 바이러스에 반복적으로 생기를 주는 것같이 독자적으로 온전히 민감하게 동일한 재해들을 유발시킬 수 있었다. 의학이나 역사를 무시한 채 일종의 정신적 실체인 듯한 페스트의 이념, 어떤 바이러스에 의해 옮겨질 수 없는 페스트의 이념은 그것이 정확히 무엇인지 몰라도 그 형태(증상)를 통해 정신은 몇몇 현상으로 묘사할 수 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통은 온몸이 마치 산송장처럼 만들었다. 하지만 페스트는 오직 뇌와 폐만을 감염시키고 손상시킨다. 이것은 사람의 의식과 의지에 직접 관련되어 있는데 광기에 따른 기분이나 신체내의 작용들을 통제할 수 없다.
과학적으로 정확히 상술 할 수는 없지만 정신적 외양의 도출로 이상함, 신비함, 모순성, 특징들을 통해 생명과 조직을 잔혹하게 파괴하는 페스트는 고통과 같다. 그 고통은 마치 모든 감수성의 고리들 속에서 강렬하게 증대하며, 깊숙이 침투할 뿐만 아니라 통증을 다양하게 전파하고 확대시킨다. 그러나 쥐도 세균도 없이 그리고 그것들과 접촉하는 일도 없이 페스트가 확산되어 가는듯한 정신적 해방, 즉 이러한 정신적 자유로부터 우리는 하나의 스팩터클 속에서 절대적이고 엄청난 유희를 창출해낼 수 있다. 그것은 환경과 도시를 파괴하고 집단으로 도피를 유도하며, 사람들을 공포로 몰아넣는 힘의 절정으로 나타난다. 그러다 그것은 정신을 해방시켜 병이 악화됨을 느끼면서 오히려 죽음이 오는 것을 맞이하게 한다. 그들이 해대는 불평은 무가치하며, 문이 열린 집을 향해 탐욕스런 빈민들마저 그것의 무용함을 안다. 연극, 그것은 바로 현실에 아무런 이득을 주는 일 없이 무용으로 밀고 나가는 행위의 즉각적인 무상성(無償性)인 것이다.
(페스트의 최후 생존자들은 극도의 흥분상태로 이해할 수 없는 행동들을 한다. 상벌이 부재하다거나 죽음이 다가온다는 생각도 사람들의 이런 부조리한 행위의 동기가 되기에 충분하지 못하고 죽음이 모든 것을 다 종식시킬 수 있다고 믿는다. 그들은 도망가기는커녕 그 자리에 남아서 죽어가는 가고 시체더미에서 욕정을 드러내는 충동을 억제하지 못한다.)
겉으로 보기에 아무런 손상 없이 죽어가는 페스트 환자의 상태는 현실적으로 아무런 이득도 주지 않으면서 그 느낌들이 바닥까지 탐사되고 또 상반된 감정으로 전환되는 배우의 상태와 일치한다. 페스트의 이미지들은 마치 탈진 상태에 빠진 정신의 힘이 최종적으로 발산하는 것처럼 보인다. 페스트처럼 연극에서도 시적 이미지들은 현실을 필요로 하지 않으며 감각적인 것 속에서 자기의 행정을 시작하는 하나의 정신력이 된다.
(살인자의 격분과 비교해보면, 비극적인 배우의 분노는 닫혀진 어떤 곳에 순수하게 남지만 살인자의 격분은 행위를 완수함과 동시에 그에게 영감을 주는 힘과의 만남을 상실한 채 퇴색되고 아무런 힘이 공급되지 않는다. 반면 배우의 격분은 발산됨에 따라 부인될 것이며, 나아가 보편적 행동 속으로 용해된다.)
페스트는 잠자고 있는 이미지들과 잠재적인 무질서 상태를 취하고 있으며, 불현듯 가장 극단적인 제스처에 이르기까지 그 이미지들을 밀고 간다. 연극은 페스트처럼 존재하는 것과 존재하지 않는 것, 그리고 가능한 것의 잠재성과 물질화된 성질 속에 존재하는 것 사이의 연결을 재구성한다. 연극은 페스트처럼 정신을 갈등의 근원으로 이끌고 가는 힘들의 거대한 부름이다. 연극과 페스트의 본질적 유사성은 전염성보다는 잠재적 잔혹성을 밑바닥에서 밖으로 밀어내고 폭로하며 주창하는 것이다.
연극은 갈등을 고발하고 갈등의 힘을 밝혀준다. 우리에게 제공된 삶은 결코 열광적인 주제들을 제안하지 않지만 연극의 집단성에 의해서 그 거대한 암종은 사라질 수 있다. 그러므로 연극은 페스트처럼 복수에 불타는 재앙의 방식이나 구원을 위한 전염병으로 만들어져야한다. 페스트는 완전한 공황이며 그것이 휩쓸고 지나가면 죽음이나 정대적인 정화 이외에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연극도 이처럼 파괴 없이는 획득되지 않는 최상의 균형이다. 정신의 활력을 자극하는 마술적 환각은 인간 스스로에게 가면을 벗겨주어 거짓과 비열함과 저속함과 위선을 드러나게 한다. 이러한 자발적 고발은 어둠을 들춰내서 사회로 하여금 영웅적이면서도 우월한 태도를 취하도록 한다. 연극은 우리가 더 이상 신뢰하지 않는 도그마들로부터 우리에게 본능적이고 마술적인 것과 동등한 모든 가치들을 되돌려줄 것이다.
Ⅲ. 연출과 형이상학
<로트의 그 딸들>의 그림에서 직접적으로 보여 지는 이념은 성욕과 생식에 관한 이념이다. 그 밖의 다른 이념들은 형이상학적이다. 그것은 생성의 이념, 숙명의 이념, ‘카오스’에 관한 이념, ‘경이로움’과 ‘균형’에 관한 이념이 있다. 그리고 말의 무력함에 관한 이념이 있다.
이처럼 말이나 단어의 분절언어를 사용하지 않고 감정을 표현해내는 것이 연극에도 필요하다. 서양 연극에서 대화(일종의 책)로만 이루어진 무대는 진정한 것이 아니다. 무대는 물질적인 장소이다. 그리고 감각의 시는 물질적 언어로 무대 스스로 말할 수 있게 한다. 물질적 언어는 무대를 차지하고 있는 모든 것을 포함하는데 가령 음악이나 춤, 도형, 판토마임, 무언의 몸짓, 제스처, 억양, 건축, 조명, 무대장치 등 이다. 이런 물질적 언어는 공각적인 시의 형태가 되어 이념과 정신의 태도들, 자연의 양상들을 표현한다. 배우도 포함된다.
하지만 파롤의 지배 하에서만 생명을 얻을 수 있는 우리의 연극은 물질적 언어들을 무시한다. (나는) 이런 텍스트에 의존한 연극을 ‘기술적인 것’이라고 부른다. 이런 기호들은 우리가 ‘연출’이나 ‘실현’이라고 부르는 것과 관련된다. 하지만 이런 연출에 의한 고정된 목표를 지향하는 서양의 연극보다는 연극언어가 무대를 출발해서 무대에서 자발적으로 창조의 효력을 이끌어내고 파롤을 거치지 않고 직접적으로 무대와 만나는 것이 더 연극적인 것이 된다.
오늘날의 연극은 사회, 도덕적으로 이의를 제기하지 못하고 그저 등장인물들의 심리생태만을 보여준다. 이런 고정관념은 있음직하지 않을 뿐 아니라 덧없고 물질적인 인간의 악취만을 풍기고 있다. 연극은 ‘위험’과 단절되어 파괴적인 효력을 잃어버렸다. 이것은 모든 시의 기초를 이루는 심오한 무질서의 정신과 단절된 것이다.
우리는 인습에 의해 사물을 인지한다. 그리고 사물이 내재하는 모든 관계들이나 형태와 그 의미에 새로운 이의를 제기하는 시에 대해 무질서하다고 생각한다. 만약 이런 형태를 전복시키는 일, 그리고 의미들을 이동시키는 일은 전적으로 연출과 관련 있는 공간에서 이러한 유머 있는 시의 본질적인 요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연극의 실현은 극단적인 시적 결과들을 도출해 낼 때, 그 실현 가능성들과 뒤섞일 수 있다. 연극의 실현 가능성은 전적으로 운동과 공간의 언어로 간주되는 연출의 몫이고 이것은 형이상학을 만드는 일이다.
우리는 연극이 지니고 있는 모든 표현 수단들을 새롭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분절언어를 형이상학으로 만드는 일. 즉 언어를 예외적인 방법, 습관적이지 않은 방법, 새로운 방법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이것은 결국 언어를 ‘주술’의 형태로 고찰하는 것이다. 통상적인 표현으로 ‘종교적’이거나 ‘신비적’이라는 말들을 사용하는 것으로 단순히 언어를 갖다 부쳐 사용만 할 줄 아는 우리의 무지를 비판한다. 또한 종합하고 유추하는 정신에 대한 우리의 심각한 무지를 비판한다.
모든 가능한 차원 위에서 제스처와 역양, 조화의 사용에 관한 비밀들을 있는 그대로의 상태로 보존해온 동양의 연극은 정신을 지배하는 물리적 효능이 존재한다. 우리는 문명이 만들어낸 사물의 한정적 언어들을 혼신을 다해 지속적으로 파괴해야하며 사고의 자유로운 실천을 누려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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