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115_광기의역사_미셸 푸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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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부
제1장 "광인들의 배"...41
제2장 대감호...113
제3장 비행의 세계...165
제4장 광기의경험...211
제5장 정신이상자들...249
제2부
서론...291
제1장 종들의 정원에서의 광인...307
제2장 정신착란의 선험성...353
제3장 광기의 형상들...415
제4장 의사와 환자...481
제3부
서론...545
제1장 대공포...559
제2장 새로운 분할...597
제3장 자유의 선용...653
제4장 정신병원의 탄생...711
제5장 인간화의 악순환...779
제 4장. 광기의 경험
구원빈이 창설되고 독일과 영국에서 최초의 교도소가 개설된 시기에서 18세기 말까지 고전주의 시대는 감금의 시대이다. 방탕한 사람, 낭비벽이 심한 아버지, 탕아, 신성 모독자, ‘자살하려고 애쓰는’ 사람, 자유사상가가 감금당한다. 고전주의 시대 특유의 비이성의 경험.
고전주의 시대에 광기의 세계는 한결같지 않았다. 어떤 광인들의 지위는 특별하다. 파리의 한 구빈원은 이성을 잃은 빈민을 취급할 권리를 확보해두고 있다. 런던에서 베들리헴 구빈원은 ‘미치광이’라고 불리는 이들만을 위한 시설이다. ‘치료할 수 없는 자로 간주된’ 미치광이들은 수용되지 안았으며, 이러한 방침은 구빈원 안에 치유 불가능한 미치광이들을 위한 특별건물 두 동이 건축될 1733년까지 계속된다. 구빈원의 다른 시설들에서는 의료행위가 전혀 실행되지 않는다. 단 한 명의 의사만이 피티에에 거주하면서 구빈원의 각 시설을 일주일에 두 번 방문하게 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환자가 어떻게 시설로 들어왔는지는 설명하지만, 치유에 대해서는 어떤 방법으로도 시도하지 않았다.
정신이상자를 구빈원의 진료에 맡기지 않고 그저 구빈원에 머물도록 정죄하는 여러 차례의 기이한 사법적 판단이 증거하듯이, 수용은 정신이상자를 공식적으로 경범죄자들의 무리에 등록시키는 조직이다. 수용시설이 감옥의 모습을 띠고 심지어 광인들이 아무런 차이 없이 이 두 기관에 나뉘어 수용되었을 정도로 두 기관이 흔히 혼동되었다. 대부분의 구빈원에서는 정신이상자가 아무런 구분도 없이 다른 모든 재원자나 피수용자와 뒤섞여 있다. 가장 불안한 정신이상자만이 전용 숙소를 할당 받을 뿐이다. 몇몇 시설에서는 광인들이 이론적으로 치료될 수 있는 범위 내에서만 광인들을 받아들이지만, 다른 시설들에서는 광인들로부터 해방되기 위해서나 광인들을 바로잡기 위해서만 광인들을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전자는 수가 더 적을 것이고 공간이 더 협소할 것이다. (파리의 시립병원에는 80명 이하인 반면, 구빈원에는 수백 명, 어쩌면 수천 명 가량) 광기의 경험은 질병의 경우처럼 비록 제한적이라 할지라도 부정될 수 없다. 광기의 경험은 역설적으로 광기가 수용, 징벌, 교정의 영역에 속하게 되는 다른 경험과 동시대적이다.
프랑스의 구빈원, 영국의 ‘워크하우스’, 교도소, 또는 감옥에서 구별 없이 마주칠 수 있는 이들로 말하자면, 그들이 그 당시에 막 생겨나고 있는 의학적 이해방식에 따라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정확하게 파악되지 않는 일련의 질병에 걸린 경우일 것이라고 쉽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정신의 질병들이 영원한 앎 속에서 병리학에 의해 분류되던 확고한 의학적 범주들을 가려내는 것은 의사-역사가들이 즐겨 몰두하는 작업이다. 정신의학은 자체의 영원성에 대한 최초의 보증을 이 사실에서 얻는 것이고,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일이 정신의학에서 생긴다 해도, 정신의학의 탐색대상이 실재했고 시대를 가로질러 정신의학을 기다리고 있었다고 인정하는 것은 아마 정신의학에 안도감을 가져다 줄 것이다. 게다가 수용의 의미와 의료기관에서 수용을 채택하게 된 방식을 우연히 염려하게 된 사람도 어쨌든 광인들이 감금되었고 그 애매한 실천에 이미 의학과 관련된 내재적 정의의 형상을 띠는 것이 숨어 있었다고 생각함으로써 안도의 표정을 짓지 않을까? 수용되는 정신병자들에게는, 정신병의 이름만이 결여되어 있었던 셈이다.
17세기 이전 광인은 무엇일 수 있었는가. 광인은 실증주의에 의해 의학적 지위를 부여 받기 훨씬 이전인 중세에 이미 개인으로서 충분히 독립적인 존재였고 환자보다는 인물로서의 개체성을 획득했을 것이다. 그러나 중세 말부터 이 개체성은 어떤 의학적 인본주의의 염려대상이 되었다. 동방과 아랍 사상이 결정적이었을지 모른다. 에스파냐에서 15세기 초에 정신이상자들을 위한 구빈원이 최초로 세워졌는데, 수도회에서 포로 석방 이후 계속 세워졌다.
중세의 일상생활에 현존하고 중세의 사회 지평에서 친숙한 인물로 떠오르는 광인은 르네상스 시대에 다른 방식으로 인식되고, 정확히 의학적 지위를 부여 받지 못한 상태에서 세계로부터 고립되면서 모호한 실천의 대상이 된다. 그러다 17세기에 이르러 광인은 개별화의 윤곽선이 희미해져 고전주의시대의 비이성의 일반적 이해 속으로 사라진다. 17세기의 보호소들 한가운데서 광인의 대혁명 진전에 개혁의 움직임이 태동할 때까지 흔적을 찾아보기 힘들 만큼 모습을 감춘다. 그러다가 수도회의 구빈원의 설립하면서 기존 나병환자 수용시설의 존립을 위해, 수감자(환자)를 위한 형무소로 바뀌었고, 이에 따라 거기에 머물러 있던 정신이상자들은 교정의 체제로 넘어갔다. 감옥체계형성.
광인의 수용은 모든 의학적 통제에서 벗어나 있는 탓에 자체의 고유한 논리만이 있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면 광인의 수용은 필연적으로 투옥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광기의 의식이 변질되면서, 정신이상자들의 보호소가 더 이상 구빈원이 아니라 기껏해야 교도소로 인식되기에 이른다. 르네상스 시대의 말기와 고전주의 시대의 절정기 사이에 제도의 변화뿐만 아니라 광기에 대한 의식의 변질이 일어난 것이다. 이제 이러한 의식을 보여주는 것은 수용시설, 징역 및 교정시설이다.
수용. 광기에 대한 매우 실증적 경험, 르네상스 시대에 광인을 분명하게 특징짓던 개체성과 중요성을 광인에게서 빼앗음으로써 광인을 새로운 경험 속으로 밀어 넣고 우리의 통상적 경험영역을 넘어 광인의 새로운 얼굴, 우리가 순진한 실증주의에 입각하여 모든 광기의 본질을 알아본다고 믿는 얼굴 자체를 준비하는 경험에 대한 전적으로 외적인 접근방식이다. 수용과 입원이 병행하는 현상 때문에 우리는 틀림없이 이 두 가지 제도적 형태의 고유한 연대에 주의를 기울일 것이고 병원이 사실은 교도소와 직접적 관련성을 갖지 않는다는 것을 확실하게 증명하려고 애쓸 것이다.
교회법과 로마법에서 광기의 인정은 의사의 진단으로 결정되었다. 모든 정신이상의 판단에는 의료의식이 내포되어 있었다. 의사는 모든 신호체계를 자신의 경험에 따라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 그리고 의학적 판단에 근거해서만 정상인과 정신이상자, 범죄자와 책임을 질 수 없는 정신병자를 구별 할 수 있다. 그런데 수용의 실천은 전혀 다른 유형으로 구조화되고, 어떤 식으로도 의학적 판단에 종속되지 않으며, 다른 의식의 영역에 속한다. 영국에서는 주변사람들에 의해 수용이 요청되건, 치안판사가 관할구역의 질서유지를 위해 수용의 필요성을 제기하건, 수용 영장의 발부 여부를 결정하는 사람은 치안판사이다. 프랑스에서는 수용 대상자의 경범죄나 중죄가 입증된 경우에 때때로 법원의 판결에 근거해서 수용이 결정된다.
17세기에 광기는 사회적 감성의 문제가 되었다. (수용청원쇄도) 광기는 범죄, 무질서, 추문과 가까워지면서 이것들과 마찬가지로 사회적 감성의 가장 자연발생적이고 가장 원시적인 형태들에 의해 판단되기에 이른다. 수용과 수용을 둘러싼 법 해석이 관행에서는 정신이상자에 대한 의학의 영향력이 조금도 허용되지 않았다. 구빈원에서도 의학의 통제는 불필요해지고 광기가 실재하는 곳에서 광기를 식별하게 되어 있는 결정권은 점점 더 “전 사회의 이름으로 관리되는”듯하다.
결과적으로 의학의 도움을 받아 광기의 한계와 형태를 파악할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공들여 구상된 ‘법적 광기론’(판단), 그리고 광기를 거칠게 이해하고 탄압을 위해 이미 준비된 수용형태를 이용할 뿐만 아니라 사법적 중재를 위해, 그리고 사법적 중재에 의해 마련된 구별 방식을 충실하게 준수하려고 하지 않는 사회적이고 거의 공안적인 ‘실천’(수용), 이 양자 사이의 괴리만이 있는 듯하다.
이러한 의식은 수용의 실천을 침해하지 않는다. 이 의식과 수용의 실천은 서로 다른 두 세계에 속한다. 하나는 형식과 의미가 분석되는 법적 주체로서의 인격과 관련된 어떤 경험의 영역에 속하고, 다른 하나는 사회적 존재로서의 개인과 관련된 어떤 경험에 속한다. 전자는 정신이 이상함에 따라 책임을 면제받지만, 후자는 광기로 인해 죄의식의 인접부로 끌려 들어간다. 정신질환의 의학이 성립된 것이다.
19세기가 비이성적 인간을 병원으로 보내기로 결정하게 되고 이와 동시에 수용이 환자의 치유를 목적으로 하는 치료 행위로 전환되기에 이르는 것은, 고전주의 시대의 합리주의가 언제나 출현가능성으로 남겨두었던 정신이상의 이 다양한 주제와 광기의 이 잡다한 얼굴을 혼란스럽고 우리로서는 분간하기 어려운 단일성으로 축소시키는 폭력적 술책에 의해서다.
제 5장. 정신이상자들
정신이상자를 감금한 명분을 일관성있는 질병학에 따라 분류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 등록부에서 찾아볼 수 있는 피수용자들에 대한 언급 : 집요한 소송광, 소송하기 좋아하는 사람, 매우 심술궂고 트집잡기를 좋아하는 사람, 밤이고 낮이고 노래를 부름으로써 다른 사람을 괴롭히고 가장 끔찍한 신성모독의 언사를 지껄이는 사람, 격문 부착자, 엄청난 사기꾼, 불안해하고 침울하며 무뚝뚝한 사람 등이다.- 이 문구들로 지시되는 것은 질병이 아니라, 극단적 ‘결함’으로 인식되었을 광기의 형태이다. 바로 고전주의 시대에 광기가 윤리의 형태로 인식되었던 것이다.
합리주의. 합리주의는 역설적으로 이성이 착란되지는 않으나, 도덕생황에 전혀 바르지 않고 의지가 사악하다는 점에 비추어 인식될 그러한 광기를 만들어낼 수 있었던 듯하다. 결국 광기의 비밀은 이성의 온전한 상태가 아니라 의지의 질에 깃들여 있는 것이다.
고전주의에 의한 광기의 경험과 이 경험에 대한 고전주의의 거부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도덕규범뿐만 아니라 윤리의식 전체이다. 광기를 감시하는 것은 불안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아니라 바로 이 윤리의식이다. 수용은 고전주의 시대의 이성이 광기의 모든 위력을 몰아냈고 사회제도의 층위에서 결정적 분할선을 확립하기에 이르렀다는 것을 보여주는 듯하다. 결함과 광기 사이의 모든 엄밀한 구별형태에 대한 무감각은 고전주의 시대의 의식에서 가장 본질적이고 아마 가장 책임이 있을 주체의 의지가 문제되는 결정적인 선택으로 이성-비이성의 분할이 실현되는 더 깊은 영역이 있음을 말해준다.
비이성에 대한 일반적 이해방식에는 엄밀한 의미에서의 광기와 관련되고 정확한 의미의 구분 없이 정신이상자, 미쳤거나 탈이 난 정신의 소유자, 괴짜, 정신착란에 빠진 사람으로 지칭되는 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특별한 조정 기능 같은 것이 있다. 이 특별한 형태의 이해방식은 비이성의 세계에 있는 광기의 고유한 모습을 그려낸다. 이러한 이해방식은 추문과 관련된다. 그리고 이것들의 공공연한 표출은 본보기와 속죄의 작용력을 죄악에 부여했다. 악은 극치에 이르러 사라지기에 앞서 반드시 대중 앞에서 고백되고 표명되어야 했다. 수용은 비인간적인 것이 수치만을 유발하므로 은폐시키는 방법으로 가문의 명예와 종교의 명예를 고려하여 권한다.
은폐의 대상에 예외가 하나 있다. 광인의 경우가 그것이다. 중세부터 광인을 보여주는 것은 오랜 풍습이었을 것이다. 광기는 조용한 보호소에서 구경거리로 떠오르고 모든 이의 즐거움을 위한 추문이 된다. 수용은 비이성을 숨기고, 비이성이 불러일으키는 수치를 드러내지만, 광기를 명백히 보여주고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광기는 짐승의 모습을 띤다. 혼란된 사람이 아닌 본능적 격분에 휩싸인 짐승. 하지만 광기의 인식에 수반되는 이러한 공포는 두세 세기 후에 의미가 완전히 달라진다. 인간 속의 동물은 더 이상 저승의 세계를 가리키는 지표의 가치를 갖지 않을 뿐 아니라, 광기 이외의 다른 어떤 것과도 관계가 없는 인간의 광기, 곧 자연상태에 놓여 있는 인간의 광기가 되었다.
광기는 일반적 비이성이 전달할 수 없는 어떤 교훈을 줄 수 있을까? 광기의 발작과 정신이상자의 광포함은 다른 정신이상자들의 필시 더 분별있게 들릴 말에서라면 찾아볼 수 없을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일까? 도대체 어떤 점에서 광기는 더 특별하게 의미가 있는 것일까? 르네상스시대의 기독교 체험과 밀접한 십자가의 광기에서 희생이라는 위대한 비이성을 통해 이성이 상실되도록 인간의 이성에 대해 오만과 확실성의 포기를 요구하는 것은 이제 문제로 대두되지 않지만, 그리스도가 인간으로 사는 동안 광기를 영광스러운 것으로 존중한 듯한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광기를 존중한다는 것은 광기에서 질병이라는 무의지적이고 불가피한 사고를 간파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적 진실의 그 하부 한계, 우발적이지 않은 본질적 한계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광기의 의학적 진실은 광기를 고전주의적 도덕세계 속으로 집어넣을 수 있는 모든 것에서 광기가 빠져 나오게 되면서 규명되기에 이르렀다. 광기는 이제 우리에게 발생원인들의 연쇄, 그리고 형태들에 관한 추론의 움직임과 함께 결정론의 당연한 규칙성만을 내보인다. 왜냐하면 광기는 짐승과 사물의 음울한 세계로, 족쇄가 채워진 짐승과 사물의 자유로 되돌아감에 의해서만 근대인을 위협하기 때문이다. 17세기와 18세기가 광기를 알아보는 것은 ‘자연’의 지평 위해서가 아니라 ‘비이성’의 바탕 위에서이다. 광기는 메커니즘을 드러내지 않고, 오히려 동물성의 괴기스런 형태 속에서 맹위를 떨치는 자유를 드러나게 한다.
광기가 이해될 수 있는 것은 오직 비이성과 관련해서 일 뿐이다. 비이성은 광기의 매체이다. 오히려 비이성은 광기의 가능공간을 규정한다고 말하자. 고전주의 시대의 인간에게 광기는 비이성의 자연적 조건, 심리적이고 인간적인 뿌리가 아니라, 단지 비이성의 경험형태일 뿐이다.
우리 시대의 정신의학도 마찬가지겠지만, 19세기의 정신의학은 18세기의 관행을 폐지했다 해도, 18세기의 지식을 제쳐놓았다 해도, 고전주의 시대의 문화 전체에 의해 새롭게 정립된 비이성과의 그 모든 관계를 은밀히 이어받아 변모시켰고 변위 시켰다. 그들은 객관성에 입각해서 말한다고 하지만, 본래의 의도와는 달리, 비이성의 윤리와 동물성의 추문이 여전히 깃들여 있는 광기를 대상으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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