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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주의몫(모더니티총서10)
카테고리 정치/사회 > 정치/외교 > 정치일반 > 사회철학
지은이 조르주 바타유 (문학동네, 200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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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부 이론적 도입

I. 일반경제의 의미
1. 지구 에너지와 경제의 의존관계
2. 체계의 성장에 쓰일 수 없는 과잉 에너지에 대한 무조건적인 소모의 필요성에 관하여
3. 일부 유기체 또는 총체 들의 빈곤과 살아 있는 자연의 과잉 풍요
4. 과잉 에너지의 파국적 소모로서의 전쟁

II. 일반경제의 법칙
1. 생화학 에너지의 과잉과 성장
2. 성장의 한계
3. 압력
4. 압력의 첫번째 결과: 확장
5. 압력의 두번째 결과: 낭비 혹은 사치
6. 자연의 세 가지 사치: 먹기, 죽음, 유성생식
7. 노동 또는 기술에 의한 공간의 확장과 인간의 사치
8. 저주의 몫
9. '일반적' 관점과 '개별적' 관점의 대조
10. 일반경제의 해법, 그리고 '자의식'

제2부 역사적 여건들 I ―소비 사회

I. 아즈텍인들의 제의와 전쟁
1. 소모 사회와 기획 사회
2. 아즈텍인들의 세계관과 소모
3. 인간을 제물로 바치는 멕시코의 제의
4. 인간 제물과 제의 집행자의 내밀성
5. 전쟁의 종교적 성격
6. 종교 우선에서 군사적 유효성의 우선으로
7. 희생 혹은 소모
8. 저주받은 그리고 신성한 제물

II. 경쟁적 증여(포틀래치)
1. 멕시코 사회의 과시적 증여와 증여의 일반적 중요성
2. 부자들과 제의적 낭비
3. 북서부 아메리카 인디언들의 포틀래치
4. 포틀래치 이론 (1): 권력의 획득으로 환원된 증여의 역설
5. 포틀래치 이론 (2): 증여의 표면적 비의미
6. 포틀래치 이론 (3): '지위'의 획득
7. 포틀래치 이론 (4): 근복적인 제1의 법칙
8. 포틀래치 이론 (5): 모호성과 모순
9. 포틀래치 이론 (6): 사치와 빈곤

제3부 역사적 여건들 II ―군사적 기획 사회와 종교적 기획 사회

I. 정복 사회 : 이슬람
1. 이슬람교에 의미 부여하기의 어려움
2. 헤지라 이전 아랍인들의 소모 사회
3. 이슬람의 탄생 또는 군사적 기획 사회
4. 후기 이슬람 또는 아정으로의 회귀

II. 무장 해제의 사회 : 라마교
1. 평화로운 사회
2. 근대 티베트와 영국인 분석가
3. 달라이 라마의 종교적 힘
4. 13대 달라이 라마의 좌절과 반항
5. 군사 조직의 공격에 대한 승려들의 저항
6. 전체 잉여와 라마의 소모
7. 라마교에대한 경제적 설명

제4부 역사적 여건들 III ―산업 사회

I. 자본주의의 기원과 종교개혁
1. 신교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2. 중세의 경제, 이론과 실제
3. 루터의 도덕적 입장
4. 칼뱅주의
5. 종교개혁의 간접적 효과: 생산 세계의 자율성

II. 부르주아 세계
1. 작업 세계와 내밀성의 근본적 모순
2. 종교개혁과 마르크시즘의 유사성
3. 근대 산업 세계와 부르주아 세계
4. 물질적 궁핍의 해결과 마르크스의 급진주의
5. 종교와 봉건제도의 잔재
6. 공산주의, 그리고 사물의 유용성과 인간의 합치

제5부 현재의 여건

I. 소련의 산업화
1. 진퇴양난의 비공산주의 진영
2. 공산주의에 대한 지식인의 입장
3. 축적과는 대립적인 노동자 운동
4. 축적에 무기력한 황제들과 공산주의의 축적
5. 토지의 '공유'
6. 가혹한 산업화와 허약한 비판
7. 러시아 문제와 세계 문제의 대립

II. 마셜 플랜
1. 전쟁의 위협
2. 생산 방법들 사이의 비군사적 경쟁 가능성
3. 마셜 플랜
4. 고전경제와 일반경제의 대립
5. 프랑수아 페루의 견해와 일반경제의 관점에서 본 일반적 이익에 대하여
6. 소비에트의 압박과 마셜 플랜
7. 아니면, 전쟁의 위협만이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유일한 기제로 남는다
8. 역동적 평화
9. 미국 경제의 완성과 인류의 완성
10. 부의 궁극적 사용에 대한 의식과 자아의식



Ⅰ. 아즈텍인들의 제의와 전쟁

 1. 소모사회와 기획사회 | 일반경제운동의 원칙은 낭비다? 자원이 넘쳐 잉여가 발생하면 순수하게 소모되기도 하지만 성장해야 한다면 성장에 할애되는데 성장은 무질서 하게 끓어오르는 힘에 질서를 부여하며 그 힘을 일정한 결실작업으로 유도한다. 하지만 성장을 무한 지속될 수 없다.

인간의 삶의 양상은 제멋대로 사느냐(소모사회) 또는 다산성을 보장해 주는 기획의 필요에 따라 사느냐(기획사회)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인류가 사물들에 대해 대체로 가지고 있는 명확한 인식이 온전한 자아 인식일 수는 없다. 그 상태의 인류는 노동의 결과를 전혀 누리지 못한 채 오직 노동을 위해 살 뿐인 노동의 인류이기 때문이다.

2. 아즈텍인들의 세계관과 소모 | 그들의 세계관과 정신은 우리와 정반대다. 아즈텍인들은 세상은 4번의 창조활동이 있었고 각 세상을 지키는 태양이 있었는데 모두 멸망하고 자신들이 5번째 태양신의 세상에서 살고 있다고 믿었다. 그들은 태양이 사멸하고 우주가 멸망하는 것을 막고 신이 창조한 우주가 지속적으로 그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대규모적인 인신공양을 행했다. 생산이 우리에게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면 아즈텍인들에게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는 것은 소모적 제의인 것이다. 그들은 우리가 '노동'에 애쓰는 만큼 '희생'에 정성을 쏟았다. 그들의 눈에 태양은 그자체로 희생의 표현이었다. "태양의 먹이가 되기 위해, 살과 피를 제물로 바치기 위해" 인간뿐 아니라 전쟁역시 만들어졌다는 이러한 신앙은 신화 못지않게 소모의 극단적 가치를 뚜렷이 드러낸다.

3. 인간을 제물로 바치는 멕시코의 제의 | 전쟁에는 정복이 아닌 소모(인간제물을 바치는 제의)의 의미가 있었으며, 더구나 멕시코인들은 전쟁이 없으면 태양 역시 그 빛을 잃어버릴 것이라고까지 생각했다. 부활절이 가까워지면 멕시코인들은 육체가 아름다운 젊은이를 제물로 선별하여 1년 동안 대귀족처럼 호화로운 생활을 누리는데 제물은 존귀한 지위에 어울리는 우아함과 위엄을 가질 수 있도록 세심한 배려를 받았고 제물로 바쳐지기 5일전 신의 영예가 주어진다. 죽음의날, 사제들은 피라미드 꼭대기에서 인간 제물(전쟁의 포로)의 가슴을 흑요석 칼로 찔러 심장을 꺼내 태양에 바친다. 엄청난 폭력이 태양신을 달래는데 예사로 일어나는 것이다. 그리고 축제가 시작되면 제물로 바쳐진 시체를 뜯어먹기도 했다.  

4. 인간 제물과 제의 집행자의 내밀성 | 아즈텍인들은 포로들에게 그들이 요구하는 음식과 술을 주면서 인간적으로 대하면서 함께 춤을 추고 노래하며 희생물들의 고뇌를 진정시키고 싶어 했다.(제물들은 그들이 제물로 바쳐질 것을 알지 못한다.) 축제를 열어 제물을 만취상태로 만들거나 ‘쾌락의 여인’들을 제공하기도 했다.

5. 전쟁의 종교적 성격 | 멕시코인들은 전쟁과 제의의 밀접한 관계를 의식했다. 산파들은 아이(남자)가 태어날 때 탯줄을 자르면서‘너는 태양의 봉헌물로 태어나 전쟁터에 나가는 것이 의무이자 목표임’을 맹세하며 그들에게 있을 희생을 미루어 선포한다. (포로를 데려온 전사는 제의에 있어 사제 못지않은 성스러운 축연의 중요한 역할 담당한다.) "신이시여, 진실로, 우리 전사들이 전투 중에 죽기를 원하게 하소서. 당신이 우리를 이 세상으로 보내신 것은 오직 우리의 피와 우리의 살을 태양과 대지에 제물로 바치기 위함이 아닙니까" (전사들을 위한 테츠카틀리포카에게 비는 기도)

전사가 전쟁에서 죽는 다는 것은 그들의 존재 이유(태양신을 위한 봉헌물로 전쟁에서 피흘림)에 걸맞게 가장 영광스러운 최후라는 것이다.

6. 종교 우선에서 군사적 유효성의 우선으로 | 멕시코사회는 군사 사회가 아니라 순수한 폭력을 행하는 사회이고 전투를 과시하는 형태의 사회, 전사들의 사회이다. 그들은 전쟁의 합리적 조직이나 정복 같은 것은 알지도 못했다. 오히려 진정한 전쟁 사회란 기획 사회이다. 따라서 노예들의 대량살상으로 표상되는 부의 탕진만큼 군사적 조직화(기획사회)와 대립적인 것은 없다. 아즈텍인들은 그러나 소모의 잔인한 폭력성과는 대립적인 기획과 이성의 방향으로 옮겨가며 전사활동에 변화가 생긴다. 왕을 대신하는 포로의 대속행위는 소모의 심리적 원칙인 내적 폭력(왕을 향한)을 타자(신으로 구현된 포로) 에게 돌리는 결과를 가져다준다. (*소모의 의미 전복)

7. 희생 혹은 소모 | 희생제의는 천박한 사용(주체의 내밀한 어떤 것이 사물화 됨)에 의해 훼손된 부분을 신성세계로 돌려놓는다. 또한 희생제의가 되살려내는 것은 천박한 사용에 의해 훼손된 제물과 제의 집행자 사이의 내밀한 관계이다.

*노예제도는 이 세계 속에 빛의 부재를 끌어들임으로써 사물을 저마다 자리 잡게 만들며, 유용성을 축소시킨다. 또한 주인에게 단지 사물로서 존재하는 노예와 사물의 한계를 정해 자신의 내밀성을 멀리하는 주인은 극도로 분리된다.

이것은 존재하는 어떤 것이 사물로 환원되는 것(천박한 사용)이다.

*노동- 사물세계에 초석을 놓은 것은 최초의 노동이었다. 그러면서 인간도 이러한 세계에(적어도 노동하는 시간만큼은) 하나의 사물이 되었다. 그래 인간의 역사는 지금까지 그러한 실추의 상태를 벗어나려고 노력하는 내밀성 추구의 역사이다.

*종교- 종교는 잃어버린 내밀성을 찾아가는 기나긴 노력이며 고뇌에 찬 추구이며, 사물의 초라함을 벗어나서 신적 질서를 회복하는 것이다. 동식물에게는 내밀한 세계의 진실을. 인간은 인간대로 성스러운 소통을 되찾게 되며. 내적 자유도 가능해진다. 이러한 깊은 자유의 의미는 유용한 작업의 한 고리로 남을 수 있는 어떤 것(인간제물?)을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고 소모하는 오직폭력만 지배하는 해방의 길을 여는 파괴에서만 얻어진다.

내밀한 세계는 정상과 비정상, 이성과 광기, 명철한 의식과 도취의 관계가 대립하는 것처럼 현실세계와 대립한다. (나는 광기가 아니면 현실적 질서에 전혀 종속되지 않는, 오직 현재에만 열중하는 자유로운 주체는 없다고 가정한다.)

내일만 걱정하지 않는다면 무익한 소모(에너지 비축하지 않음)는 나를 즐겁게 한다. 제한 없는 소모는 다른 사람들에게 나의 내밀한 부분을 드러내 보여준다. 그래서 소모는 고립된 존재들을 소통하게 해주는 길이라고 할 수 있다. 사물이 내밀한 질서로 회귀하는 것을 보장해 주는 것은 소모이다. 희생제의는 공동 작업체계를 구성하는 사람들에게 내밀성을 되찾게 해주는 광적 행위이다. 폭력은 희생제의의 원칙이나 시간과 장소에 따라 제한한다. 축제) 작업(희생제의)는 축제의 한계를 사전에 결정지어 그들을 광란에 휩싸이게 했다가 다시 세속적 시간으로 안내하는 기능을 한다. 여기서 파멸을 모면하는 것은 공동체일 뿐 제물은 폭력에 내맡겨진다.

8. 저주받은 그리고 신성한 제물 | 제물은 유용한 부의 일부로서 잉여의 부분이다. 그리고 제물은 오직 아무런 이익 없이 소모되기 위하여, 즉 영원히 파괴되기 위하여 유용성을 벗어나는 것이다. 제물로 뽑히는 순간 제물은 폭력적인 소모에 약속된 저주의 몫이다. 제물은 사물이기 때문에 사물의 질서로부터 끌어내려면 파괴를 통해 제물의 유용성, 사물성을 벗겨낼 수 있어야 한다. 제물은 제의 집행자와 내밀한 관계를 맺음으로써 제의 집행자의 소모적 제의에 참여하기에 이른다. 현실적 질서에서 빠져나가는 것은 오직 제물뿐이다. 제의는 고뇌와 광란이 뒤섞인다. 제의의 결과는 밖으로 돌려져야하고, 제의 집행자는 자신의 제산이 될 수도 있었을 제물을 거부해야 한다. 여기서 존중받는 것은 가치 경계를 넘어서는 과잉, 소모이며 그것만이 신에 합당한 대접을 받았다. 인간은 이러한 소모를 대가로 타락에서 벗어났고, 또한 현실적 질서의 냉혹한 타산과 인색함이 인간 내부에 끌어들인 사물의 무게를 걷어낼 수 있었다.



Ⅱ. 경쟁적 증여(포틀래치)

1. 멕시코 사회의 과시적 증여와 일반적 중요성 | 아즈텍 사회에서 자원의 상당한 몫을 비생산적으로 사용했다. (인간 제물로 버려지는 천박한 생명과 피) 과시적 낭비에 혼신을 기울이는 일은 막대한 부를 소유한 군주 또는 종족의 수장이 행하는 기능 중의 하나인데, 군주 또는 군주의 화신이 승인한 제물은 끓어오르는 살해 충동에 무한 소모의 가치를 부여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그들의 목숨을 주기보다 부를 주고(증여) 유희했다. 축제는 자신의 능력을 과시할 수 있는 기회였으며 누구든지 이미지, 부, 지위에 따라 할 수 있었다. -전사들이나 상인들(포추테카).

2. 부자들과 제의적 낭비(증여를 통한 교환) | 아즈텍 상인의 거래는 상품을 사고파는 것이 아니라 증여에 의한 교환이었다. 그들은 '군주'로부터 부를 증여받고 그것을 거래중인 부족들의 통지에게 선물로 주었다. 그러면 선물을 받은 그 지역의 대영주들은 왕에 바칠 다른 선물들을 준비했다. 이 증여행위를 통해 교환된 물건은 단순한 사물이 아니라 영예의 징표요, 그 자체가 영예로 빛났기 때문에 이것으로 그들은 부와 능력을 과시했다.

상인들이 거래를 마치고 돌아오면 잔치가 벌어지는데 부나 높은 지위에 있을수록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상인들과 귀족들에게 더 성대한 축제나 향연을 베풀었다. 만약 그가 신으로부터 받은 은총을 과시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그는 아주 천하게 취급받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때 치장한 포로를 같이 먹기도 함)

3. 북서부 아메리카 인디언들의 포틀래치 | 최초의 교환은 상실하거나 소비하려는 욕구와 일치했다. (트린지트, 하이다, 침샨, 콰키우틀족들 에게) 포틀래치는 상업과 마찬가지로 부의 순환 방식의 하나이다. 그러나 이것은 거래를 배제하고 그저 경쟁자에게 모욕을 주기 위한, 그에게 도전하기 위한, 그리고 그를 굴복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경쟁자는 부의 막대한 파괴를 통해 상대방의 도전을 자극하기도 한다. 이 파괴는 제의와 거의 다르지 않다.

*19세기까지도 트린지트 족 족장은 경쟁자 앞에 나타나 그가 보는 앞에서 노예들의 목을 치고 살육으로 이어지기도 함.

*추크치족은 적의 기를 꺾기 위해 소중한 개를 죽임. *북동부인디언들이 마을을 불태우거나 카누를 부숴버림.

4. 포틀래치 이론(1): 권력의 획득으로 환원된 증여의 역설 | 포틀래치는 유용한 부의 소비라고 말할 수 있다. 우리 내부에, 그리고 우리가 살아가는 공간에는 우리가 이성적으로는 유용성을 추구하지만 실제로는 유용성으로 환원될 수 없는 에너지 운동(지위, 명예?)이 있다. 우리는 우리의 에너지가 그렇게 사용하는지도 모르는 채, 우리 활동을 거기에 맞춘다. 문제의 해결은 상반된 두 가지 의미를 갖는 하나의 행동에서 찾을 수 있다. 우리는 습관적으로 익숙해진 한계들을 초월해야 하는 한편, 어떤 방법을 통해서든 초월로부터 한계를 돌아올 수 있어야 한다. 제기된 문제는 잉여의 소비인데 우리는 잉여를 증여하거나 상실하거나 파괴해야한다. 그러나 획득의 의미가 없다면 증여는 무모한 짓이다. 그러므로 '증여 한다'는 '권력을 얻음'으로 이어져야한다. 곧 증여는 증여의 주체로 하여금 부를 버림으로써 부를 초월한, 미덕과 권력을 얻게 한다.

어떤 사람이 대상을 다른 사람 앞에서 파괴하거나 증여한다면 그는 다른 사람의 눈에 증여 또는 파괴의 힘을 가진 것으로 보일 것이다. 그리고 그때부터 그는 부자가 되는데 그것은 그의 부를 가치가 드러나도록 과시적으로 소모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잃을 때만 얻을 수 있는 증여의 진정한 힘은 그것이 타자에게 얼마나 영향을 끼쳤는지에 달려있다. 따라서 포틀래치는 우주의 무한 운동과 인간의 한계를 결합시켜 주는 미덕이 있다.

5. 포틀래치 이론(2): 증여의 표면적 비의미 | 증여하는 사람은 증여받은 사람에게 증여가 부여하는 권력을 행사하며, 증여받은 사람은 다시 증여를 되돌려 줌으로써 그 권력을 깨고 싶어 했다. 경쟁은 경쟁자를 더 큰 증여로 안내한다. 선물은 점점 더 커지고 결국 증여는 반대의 의미를 갖는 모순을 안는다. 여기서 이상적인 포틀래치는 돌려받지 않는 것인데 결국 되돌려주는 사람만이 힘을 얻고 승리하는 느낌을 갖게 된다. (증여의 의미전복)

6. 포틀래치 이론(3): '지위'의 획득 | 포틀래치는 증여자에게 더한 증여를 안겨줄 뿐만 아니라 최종적으로는 지위를 안겨준다.

특권, 영예, 지위는 능력과 혼동될 수 없으며 차라리 그것은 상실의 힘과 동의어다. 지위-개인의 증여(동물적 인자 포함)에 따라 정해진다. 반면 영예는 우월성의 결과이고 타자의 재산을 가로채는 힘과는 다르다.

7. 포틀래치 이론(4): 근본적인 제1의 법칙 | 포틀래치의 궁극적인 목적은 (유용성으로 환원될 수 없는 에너지의 소모로만 얻어지는)획득이다.

-사회가 지속적으로 확보 증대시킨 자원은 어떻게든 완전한 소유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소모가 소모자에게 주는 것은 특권이다. 특권이 마치 재화처럼 그에 의해 얻어지며, 그의 지위를 결정한다.

-사회적 지위는 도구나 토지처럼 소유될 수 있다. 지위가 이익의 원천이라면 이것은 자원들의 단호한 소모행위를 통해 결정될 것이다.

8. 포틀래치 이론(5): 모호성과 모순 | 인간은 소모와 동시에 획득을 열망하며 낭비자체를 획득의 대상으로 삼는다. 자원을 소모하면 소모자에게 안겨지는 특권이 있다는 말이다. 이처럼 인간은 자원의 낭비를 거부하면서 자원의 낭비를 활용하여 인간 스스로를 모순에 빠뜨리며 이뿐 아니라 인간의 실존 자체를 모순에 빠뜨린다. 인간의 실존은 이제부터 모호성에 빠지며, 그 모호성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리고 어떤 면에서 보면 유용한 구체적 사물로부터 인간의 성장에 도움이 되는, 꼭 필요한 부분을 구분해 낸다. 그러다가 절대적 필요성이 사라지면 인간은 더 이상 '유용한 사물'을 소망하지 않는데 그때부터 인간의 실존은 포착할 수 없는 덕, 자기 자신과 재화의 무익한 사용, 그리고 놀이를 찾는다.

인간의 실존은 포착할 수 없는 것을 포착하고 싶어 하며, 유용성을 거부하던 것에서 유용성을 찾으려고 하는 것이다. 지위는 전적으로 이러한 잘못된 의지의 산물이다. 지위는 어떠한 의미에서 사물과 대립적이고 지위를 받쳐주는 것은 신성한 것이다. 지위의 전체적 서열은 계급이라고 불린다.

우리의 본성 안에는 이러한 타협이 있는데 그 점은 속임수, 책략, 덫, 착취와 분노 등이 서로 유기적으로 관계를 맺은 채 시대를 가로질러 역사적 광기를 좌우했음을 알려준다. 대체로 희생제의 혹은 포틀래치, 그리고 인간의 활동 혹인 인간의 명상(사유) 안에서 우리가 찾는 것은 언제나 그러한 그림자이며, 그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는 우리는 그것을 시, 열정의 깊이 혹은 내밀성이라고 헛되이 부를 뿐이다. 우리는 이처럼 그림자를 붙잡으려고 하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기만당할 수밖에 없다. 인식의 와해 없이는 인식의 최종 목적에 이를 수 없고, 지식의 최종적인 문제와 소모의 최종적인 문제는 같다. 파멸 없이 알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며, 부를 도모하면서 소모시킬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9. 포틀래치 이론(6): 사치와 빈곤 | 개인, 개인간의 경쟁, 성장 또는 획득의 가능성은 어떤 점에서 보면 한계가 있어서, 성장 또는 획득이 한계에 이르면 모든 실존적 탐용의 태상, 에너지는 필연적으로 거짓 탈을 쓰고 자유를 얻는 외에 다른 방법이 없다. 마침내 인간은 거짓날을 하며, 자유와 이익을 관계지으려 한다. 개인은 원칙적으로 파괴를 위해서 자원을 축적한다. 식량-식량은 부의 소유가 아닌 소비를 아주 명료하게 의미한다.

부의 축적은 상당한 지위를 드러내는 수단이 된다. 하지만 그는 지위에서 오는 자신의 폭발적인 본성을 억누를 것이다. 마치 자신이 부를 갖지 않은 것처럼 자신을 속이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가 벗어나려는 어떤 진실(자신의 폭발적인 본성)을 반대로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 확인시켜주는 기만을 범할 수밖에 없는 자기기만에 빠진다.

포틀래치는 부의 파괴(잉여의 소모)가 아니라 최종적 손실을 보는 사람은 증여자이지만 부의 총체는 유지되는 형태로 잘못된 소모를 행사한다. 이것은 여전히 생산적 소모의 보완형태라고 말할 수 있다. 포틀래치의 증여품은 그 시대의 사치품이자 그것을 자랑하는 사람의 지위를 결정짓는다.

부의 빛은 넘침의 진실, 충만한 우주가 발하는 빛이다. 진실과 진실 아닌 것을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넘침의 진실을 알 수 없으며 마침내 파멸에 이를 수밖에 없다. 그 진실에 관해 최소한의 것을 말하자면 부의 형태는 언젠가는 무너질 것이고, 그렇게 부는 부를 확보하고 있다고 믿는 사람들, 즉 인류를 조롱하기에 이를 거라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지금의 사회는 거짓으로 가득 차있으며, 부의 진리는 부지불식간에 볼품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우리 시대의 진정한 사치와 의미심장한 포틀래치는 가난한 사람, 땅을 베개 삼는 멸시 받는 사람의 몫이 되었다. 진정한 사치는 부의 완전한 멸시를 요구하며, 노동을 무시하는 사람의 무심함을 요구한다. 누더기의 영광, 무심함의 음울한 도전이 없다면 군사적 착취, 종교적 신비화, 그리고 자본주의의 방향전환 너머로 부가 갖는 폭발적 성격, 낭비적 특성, 넘침의 의미를 깨달을 사람은 이제 아무도 없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거짓은 삶의 과잉을 혁명으로 인도하고 말았다고 말해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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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체상태의예술미학의승리에관한에세이
카테고리 예술/대중문화 > 예술일반 > 예술이야기
지은이 이브 미쇼 (아트북스, 200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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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는 말
제1장 동시대미술에 관한 작은 민족지학

제2장 포스트-포스트모더니즘 시대의 동시대미술
제3장 미학이 승리한 시대의 미학을 향하여
제4장 미학의 요청―쾌락주의, 관광주의, 다윈주의



이브미쇼(저자) | 이브 미쇼 프랑스 파리 제1대학의 철학과 교수이다. 1989년부터 1996년까지 에콜 데 보자르(파리 고등미술학교)의 학장으로 재직하면서 매우 주목을 끄는 정책을 펼친 바 있으며, ‘모든 지식의 대학’의 설립자이다. 지은 책으로 『예술의 위기(La Crise de l’art contemporain』, 『예술가와 감정가들(L’artiste et les Commissaires)』, 『폭력 속에서 이루어지는 변화들(Changements dans la violence]』 등의 저서를 집필했다. ‘모든 지식의 대학’이라는 거대한 프로젝트는 2000년 1월 1일부터 365일간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국민을 대상으로 지식 강의를 했으며, 이를 기초로 백과사전을 출판했다. 요컨대 ‘모든 지식의 대학’은 “지식에 대한 토론과 민주주의에 대한 성찰의 장소이며, 20세기 마지막 민중의 대학이자 21세기 최초의 백과사전이 되었다”.

 

들어가는 말
“세상이 아름답다는 것은 굉장한 일이다.” 모든 것이 아름답다. 시체조차도 아름답기 그지없다. 문명화된 21세기에 우리는 미학이 승리는 구가하는 시대. 미에 대한 열렬한 경배의 시대, 다시 말해 미에 대한 우상숭배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윤리마저 미학으로 변해 행동양식을 아름답게 바꾸는 상황 속에서 우리는 미학의 영향력으로부터 벗어난다는 것은 아주 힘들다. *미학적 에테르ether로 증발함 - 아름다움이 마치 기체와도 같이 널리 퍼지고 확산되는 반면, 예술작품은 점점 더 소멸되어간다.

◎ 동시대예술(Contemporary art)의 진전 상황
1. 기술자와 개념으로의 대치 | 작품은 순수하게 미학적 효과를 생산하거나, 기계적 장치들과 과학적 절차들에 의해 예술적인 생산품으로 대치되고 말았다. 하나의 예술작품이 소멸하여 종말에 도달하면 거기에는 경험이외의 다른 것들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1972년 해럴드 로젠버그 - 바로 그곳에 예술의 탈규정 과정을 동반하는 대상에 대한 탈 미학화의 과정이 존재한다. 다양하고 정형성을 탈피한 많은 것들(아무거나) 이 점점 더 작품을 대체할 수 있고 그와 같은 작품이 추천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했다.
뒤샹의 레디메이드를 시작으로 이것을 팝아트로 대중화시키는데 성공한 앤디워홀, 그리고 브릴로 세제박스.. 작품의 창조자는 점점 경험의 생산자, 마술사, 혹은 효과를 연출하는 기술자가 되며, 소재는 기존의 예술적인 특성을 상실하고 만다. 전통 채색회화기법은 설자리를 잃고 설치 오브제나 퍼포먼스도 작품이 되며 의도와 태도, 그리고 개념이 작품으로 대치된다.
2. 과잉증가로 소비되고 소모되는 작품 | 작품은 여분이나 과다 혹은 초과생산에 의해 사라진다. 희귀한 진품이 부지기수로 제공됨으로써 당혹스러울 만큼, 작품이 지나치게 넘쳐나고 더 이상 아무런 강렬한 느낌도 주지 못한다. 이것은 미술관들의 발달과 그 수의 과잉 증가, 예술의 상업적 성전-예술‘시장’-으로 변모하는 미술관들을 통해 표현되고 분명히 드러난다. 공장에서 찍어낸 작품과 경험의 산물은 이처럼 ‘소비되고 소모되어‘ 결국 사라지게 된다.
이 두(앞서 언급된 두 가지의) 진전은 미술관에 있는 희귀하거나 그렇게 인정된 위대한 예술세계(환상적인 예술)에 있어, 더욱이 본래 의미의 흔적을 간직한 표현인 “더 이상 아름답지 않은 예술품” 에게 충격적인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충격을 받고 소멸되면서도, 이 세계는 호평에 상응하도록 계속 존귀하거나 희소성이 있다고 평가되고 보호되고 있다. 이러한 특수화 되고 보호되며 조건 지어지는 예술의 범위 밖에서는 훨씬 더 강력한 다른 장치가 작동하고 있는데, 바로 문화재와 상징적인 형태의 산업 생산 장치가 그것이다. 이러한 두 가지 진전과정은 위력적 창의성으로 가득한 문화산업으로 귀결된다. 다양한 영감을 키워가지만, 실상은 경국 고도의 추상화 단계에서 미학적인 경험을 할 수 있게 해주는 (미술관과 아트센터 이외의) 세상이 아름답다는 것은 실로 대단한 일이다. (예술의 영역과 일상의 경계가 사라짐)

◎ 변동, 혹은 시대변화에 대한 진단 | 1936, 발터 베냐민 “ 역사 안에서, 존재 방식과 인간 사회의 지각 방식이 동시에 커다란 간격으로 변화하고 있다.”우리는 이미 새로운 시대에 진입했다. 모더니즘은 2,30년 전에 이미 끝났다. 포스트모더니즘은 이 소멸 자체를 인정하려고 편의상 갖다 붙인 하나의 이름에 지나지 않는다. 이제 우리는 전혀 다른 미학적 경험의 세계와 예술의 세계에 진입했음을 시인해야 할 때를 맞았다.

동시대미술을 역사적으로 광범위하게 전망
1. 인류학적 전망 | 동시대미술은 어떻게 보면 우리가 믿고 있는 것 보다 놀랍지 않고 심지어 훨씬 더 진부한 것으로 드러나고 있는 게 사실이다. 여러 문명과 그 문명이 지니는 예술에 대한 개념, 또 예술과 연관된 관습의 다양성에 직면하여 동시대 미술은 일시적 의례, 물질적인 장식물, 몸치장, 불꽃 제조 기술, 연극적이거나 종교적인 퍼포먼스, 심지어 꽃다발 묶는 기술 등에 가깝다고 밝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다양성이라는 길을 통해서 평온한 상대주의에 도달하게 된다고 단언할 수 있고, 이것을 통해 행동방식을 재구성하도록 해준다는 면에서 미학적인 인류학에 다다르게 된다.
2. 민족학, 사회학적 전망 | 어떤 오브제를 유효하게 하고, 특정 개인에게는 예술가의 지위를 부여하면서도 그 오브제에 어느 정도의 기능과 가치를 인정하도록 작용하는 예술세계를 말한다. (이해 안 됨)
3. 개념적 전망 (헤겔식 접근방법) | 예술세계와 그것과 긴밀하게 결합되어있는 개념들의 관계에 대한 검토를 말며, 예술적 혹은 미학적 본성을 지닌 인간의 태도를 보다 광범위하고 현실적으로 정의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가면서 이루어진다. 심각하게 단절된 최근 미학 역사에 대해 개념적인 고찰과 역사적인 고찰을 함께 아우르는 노력이 필요하다.

◎ 본문구성
제1장_“동시대미술”에 대한 소위 인류학적이고 민족학적 접근
제2장_ 이미 종결된 20세기 시각예술사와 관련시켜 전망하면서 이러한 정황을 고찰
제3장_ 이 상황으로의 위기를 살펴보고(벤야민), 모더니즘의 한가운데 위치하는 고전주의로 돌아갈 것을 제안하면서(그린버그), 혹은 새로운 실천방식들과 새롭게 진전된 상황들을 검토하기 위해 미학적 개념들을 재규정하거나 변경하면서(분석철학), 미학적 이론이 어떻게 이 변화들을 고려하게 되는지 보여줄 것이다.
제4장_ 대중문화와 인간의 기본적인 행동방식들과 관련된 새로운 예술 체제의 의미가 무엇인가에 대한 자문 및 고찰


제1장 동시대미술에 관한 작은 민족지학


◎ 실종단계에 처한 회화의 사실 확인 | 여전히 그림을 그리는 ‘정신 나간 사람들’,‘무의식적 영웅주의자’가 남아 있는 탓에 아직도 회화는 존재하고 있으며 심지어 여전히 잘 유지되고 있는 듯 보인다. 그리고 새로운 형태로 이루어지는 미술의 부활이나 재발견을 이루어내려고 하는 강박적이고 진부한 생각들의 결정적인 종말에 대해 고찰하게 한다. 화가들은 그림 그리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며 최후 인간인 초인의 시선을 갖고 있지도 않다.

‘미술적’이고 대단히 ‘낭만적’인 미술이라..

‘미술’ - ‘그들이 하는 짓을 그들 스스로잘 모르오니, 그들을 용서해 주소서!’와 같은 회화적인 아둔함을 표현하는 상투적 문구다. 화가는 어리석게도 그저 그들의 고독한(어리석은) 모험을 계속해나간다.
‘낭만’-제 시대로부터 저주받고 진가를 인정받지 못하며 오해를 받는 화가를 일컫는 문구다. 대중은 20세기의 부르주아 대중, 비디오, 테크노, 즉석식품, 디자인을 좋아하는 대중을 말한다.

대중이 선호하는 예술?
*사진 - 주의력에 호소하는 이미지心象로 그림들을 대체했으며, 현대의 대중매체 수단을 통해 안심할 만한 아카데미즘의 옷을 입게 된다.
*설치, 복합매체 - 공간을 점령하고 시각, 청각 혹은 분위기 등의 효과를 내며 관람객의 눈높이를 떠나서 대중문화나 ‘고급소비’를 추구하는 사치문화로 연결된다. (복합매체, ‘혼합기술’을 사용하는‘복함 매체의 설치’)
*퍼포먼스, 액션 - 연극적인 행위, 무용기술 혹은 종교적 의식 등에 가까워진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복잡한 오브제가 발생시키는 온갖 효과들(즐겁게 하기, 당황하기, 낯섦, 매혹, 거부, 혐오, 공포, 무감각 등)이 물질성보다 더 중요하게 작용 한다는 것이다. 곧 강조점을 작품자체에서 작품의 효과, 관람객과의 교류(in-ter-active)로 옮겨진 것이다.

◎ 동시대 미술의 상황, in-ter-active
예술은 만들어진 효과이다. | 배치... 예술은 만들어진 효과이며 경험을 위한 작품은 소멸하기 마련이다. ‘예술조심’의 표지판. 예술작품 관람의 규칙. 1974, 톰 울프 <현대미술의 상실>- 현대의 그림이 설득력 있는 미학적 이론으로 포장되어야만하고, 그것 없이는 아무런 가치가 없다고 비꼬았다. 이것은 형식주의자 그린버그에게 표현주의 추상화는 이론서 구실을 하게하고 , 회화적 행위의 표현성을 찬양하는 로젠버그가 서명한 액션 패인팅의 분석 즉, 알아보기 힘든 그림에 불과할 추상표현주의나 액션 패인팅 등의 작품 성립하는 배경이 된다.
동시대예술의 작품이 되기 위한 준비물 : 미학적 이론, 투명입방체, 때 되면 문 닫는 미술관 (미술의 ‘관계적’ 혹은 ‘타협적’인 경향)
동시대미술과 광고의 암묵적 결탁 | 내용과 형식, 그리고 절차에 있어 미술이 광고를, 광고가 미술을 베끼면서 복제의 문화가 형성된다. 이 둘의 거리는 행사기획자가 광고 기안자나 스튜디오 책임자가 될 때 좁아진다. 이중 생활하는 큐레이터나 광고 에이전트.
예술들 사이의 유사점으로 볼 수 있는 또 다른 변화‘시는 그림처럼’.‘파라고네’| 동시대미술가들은 음악, 유행, 디자인(음악가, 유행의 창안자, 디자이너(예술의 기체 상태로의 진전을 고려함))에 주목하고 하지만 시인, 영화인, 건축가에게 무관심하다. 자기 자신 폐쇄하기.. 그들도 역시 동시대 미술에 무관심함.. 설화와 은유, 신화로서의 예술은 이제 환경, 비트예술, 실존적 분위기로부터 단절되고 있다.
예술의 집단적 성향 (배타적 이미지) | 예술은 늘 그들끼리 그룹이나 단체들 또는 부족처럼 움직이면서 일반 대중 안에 닻을 내리고 정박하지 못했다. 대중을 향한 투쟁이라 던지 심지어 그들에게 관심조차 없다. 동시대미술가들은 그들의 예술이 관계적이고 타협적인 것과 관련될 때조차 대중에게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관람 시간이 끝나면 닫혀버리는 전시장 입구.) 오히려 동시대미술 집단은 난해성과 의례적인 것의 내밀한 특성주위로 모이고 인정받고 있다. 또 파리마치, 갈라 속에 나오는 사진들이 전위적화랑에서 모습을 거의 비슷하게 드러내기도 한다. (팝아트 작가들) 비디오아트, 자라나 아르마니 매장에서 더 눈에 띈다.
모든 것이 상호교류적인 세상에서 예술의 상호작용성은 예술로서 ‘구별짓기’가 힘들 정도로 흔한 것이 되 버렸다. 하지만 역으로 이런 진부하고 흔해빠진 경험들로의 접근을 난해하게 만드는 묘한 긴장감이 들게 만든다. 부르디외 식 매커니즘에 따르자면 매우 비슷하고 구분하기조차 힘든 경험들이 구별짓기에 대한 논거들로 제공되기 위해 다른 것들로 주장된다면, 바로 이것이 동시대 미술에 속하는 것이다. 곧, 일반대중과의 관계설정에 애쓰는 게 무의미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저 작품들이 동시대 미술세계에 받아들여진 사실을 알아야 한다.
사라진 예술의 정치화 | 다분히 (정치적으로) 전투적이었던 1980(쿠르베)이후의 예술혁명과 대조적으로 우리의 예술은 중립적, 비정치화 혹은 비판의식의 결핍으로 존재한다. 정치적 계획도 없으며 비판의식에는 한계가 있다. 이것은 철저히 개인주의화된 민주주의의 정치적 수동성과 관련이 있다. 예술계의 비정치화나 퇴조가 뜻밖의 놀라운 일이라는 시선으로 볼일도 아니다.
예술의 의도적 정치화 | 예술은 미술관이나 화랑의 보호범위를 벗어나서는 실상의 (정치적으로)잔인한 경쟁에서 확실히 밀린다. 예술가가 표현하는 행동은 제한되어 있고, 눈에 띄지 않으며, 연약하고 겨우 조금 영향을 미칠 정도다. 심지어 어느 예술가는 자신이 거리에서 벌인 의미심장한 행동에 대해 ‘미미한 행동’이라고 했다. 예술의 무력함이나 ‘체면치레’로 해낼 수 있는 일이다.

◎ 기체화된 예술
뒤샹 식 레디메이드 제작과정의 통속화 | 예술가는 보잘것없는 무언가를 선택하고 행위와 사건의 흐름을 따라 하나의 뚜렷한 사물(의미가 담긴 예술작품)로 변신시킨다. 1920년 예술은 뒤샹과 함께 더 이상 본질적인 것이 아니라 절차적인 것이 되고, 하나의 본질이 아니라 본질을 규정하는 절차들에 얽매이게 된다. 샘(독립예술가협회전), 계단을 내려오는 누드(1913, 아모리쇼), R.Mutt-비선정의 원리에 도전
뒤샹식 레디메이드의 발견, 등록, 정확성에 대해서는 그 나름 치밀한 절차와 규칙이 있음을 분명히 한다. 하지만 이 실험의 대중화화 통속화가 실험을 현저히 빈약하게 만들고 단순화 시켜버린 것 또한 분명하다. 그 후로 레디메이드는 어느 곳에서나, 모든 것으로부터 존재하게 됐고 이 계획표는 일반적으로 현대인의 두뇌 속에 수립되어 있다.
‘모든 것’과 ‘아무거나’가 예술이 될 가능성(유명론) = 미학의 승리할 가능성, 이러한 레디메이드의 대중화, 통속화는 본질의 흡수나 기화에 의해 예술세계의 소멸에 대해 책임을 진다. 레디메이드의 발명은 예술을 절차적인 것으로 만들면서 비본질화 하였다. 이 절차적인 본성의 일반화는 예술을 곳곳으로 퍼져나가는 증기 혹은 가스로 변화시켰다. 이로써 세계는 하나의 미학적 분위기에 사로잡힌다. 미학이 승리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동시대미술은 이미 모든 곳에 편재해 있으면서 동시에 이미 존재하지 않게 됐다.
동시대미술세계의 관계자들 | 미술관, 비엔날레, 예술잡지, 예술협회와 같은 단체들 - 매입자, 화랑운영자, 비평가, 경매 평가인등은 동시대미술의 독자화, 보호차원에서 모든 절차들의 통합화기능으로 대 예술의 민주화 담당함 & 동시대미술의 환상유지에 기여한다. 이러한 기관들은 문화민주화의 이름으로 동시대미술의 몇몇 대표자들에 대해 경외심을 가진다. 여기서 모든 당사자들은‘이중구속’상태에 복종하게 되는데, 이들의 임무완성은 예술의 민주화이고, 임무실패는 그저 생존을 위한 예술의 게토화에 공헌하게 된다. (예. 방문객 없는 미술관..)
937,파리의 (국립)도쿄미술관 ㆍ두 프리랜서비평가 선발(경외심을 갖게 할 대표자들)

ㆍ임무완성- 건축물의 혁신으로 대중들에게 기능적으로 다가감. 넓직한 공간, 출구나 벽이 따로 없는 통로, 오히려 전시하기에 부적합한 벽면들. 이러한 새로운 정책은 신속하고 동시다발적으로 열리는 전시회, 테크노 음악공연, 퍼포먼스 역할을 하는 작품 제작을 위해 배려되었다.
ㆍ임무실패-전시되는 작품들의 모습자체를 예술로, 더 나아가 예술에 가까운 물체로도 보이지 않게 했다. 구분되지 않는‘초라한’설치작품과 노출된 건축재료, 그림과 벽 위의 낙서들. 그 가운데서도 사람들은 뭔가 볼 것을 찾아다니거나 작품을 이해하지 못해 바보스럽게 보이지 않기 위해 유유자적 그냥 거닐게 된다.

중요한 점은 대중이 이곳에서 이론의 여지없이 행복해하거나 적어도 평온을 느낀다는 것이다.(관계적 미학이다) 칸트의 정의대로 아름다움이‘특정 개념 없이 보편적으로 마음을 기쁘게 하는 것‘이라면, 이곳에는 아름다움이 안개와 수증기상태로 곳곳에 존재해 모든 관객들에게 흩뿌려진 것이다. 굳이 작품을 말하지 않아도 작품의 주제들은 별도로 존재하지 않게 됐다. 작품 주제들은 근본적으로 미학적인 경험을 낳기 위해 존재한다. 우리는 그저 느끼고 함께 나눌 뿐이다. 엄연히 예술장소로 만들어져서 예술장소의 한 본보기가 되며 또 잘 알려진 공장 빈터인 것이 중요하지 여느 평범한 공장 빈터는 다르다. 동시대미술의 문제점은 뒤샹 말 데로 ‘내부의 미미한’ 경계들만이 그 영역을 보존하며, 정의를 그것도 극도로 불안한 정의만을 확보해줄 뿐이다.



(참고)

책 소개
이브 미쇼는 ‘기체 상태’가 된 동시대미술에 대해 4개의 장으로 나누어서 명쾌한 논리로 설명해간다. 먼저 제1장 ‘동시대미술에 관한 작은 민족지학’에서는 인류학적인 접근법으로 동시대미술을 설명하고, 이 시대의 광고나 인터넷 등 여러 매체들과 ‘인터액티브’한 관계를 맺은 동시대미술의 기능에 대해 살펴본다. 또한 과거와 달리 작품 구성체들의 배치(설치미술 등)와 예술 과정(퍼포먼스 등)이 작품 제작의 중요한 특질이 된 동시대미술에 대해서도 상세히 언급하며, 2장 ‘포스트-포스트모더니즘 시대의 동시대미술’에서는 특히 현대미술과의 연관성과 차이점 등을 면밀히 분석하면서 동시대미술을 전망하고 있다.
3장 ‘미학이 승리한 시대의 미학을 향하여’에서는 발터 벤야민, 테오도어 아도르노, 아서 단토, 앙드레 말로 등의 학자들이 예견하고 진단해온 미학적인 성찰의 결과에 대해 서술하며, 제4장 ‘미학의 요청―쾌락주의, 관광주의, 다윈주의’에서는 쾌락을 즐기는 사회적 특성이나 전 세계적인 관광인구의 증가로 인한 문화생활의 변화를 통해 이 시대를 기반으로 하는 동시대미술의 특질을 명쾌하게 분석한다.
이러한 전개를 통해 이브 미쇼는 예술미학이 예술을 대체하고 ‘예술 경험’이 작품 제목이나 작품보다 우위에 서게 되고, 예술이 만들어지는 과정과 입장이 특성을 대신하고 타협과 관계가 본질을 구성하는 새로운 예술 체제에 대해 설득력 있는 논지를 편다.예술로 충만한 세상과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 우리가 알아야 할 예술의 기체 같은 본질

미학이 승리를 구가하는 시대, 미를 열렬히 숭배하는 시대의 새로운 예술론
21세기가 시작된 지 어느덧 5년이 지나고 있다. 지난 20세기와 21세기의 경계에서, 세계 각지에서는 새로운 세기를 맞이하는 기대에 차서 각종 행사를 성대히 열었다. 그중 단연 돋보이는 행사는 프랑스의 ‘모든 지식의 대학’이었다. ‘모든 지식의 대학’이라는 거대한 프로젝트는 2000년 1월 1일부터 365일간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국민을 대상으로 지식 강의를 했으며, 이를 기초로 백과사전을 출판했다. 요컨대 ‘모든 지식의 대학’은 “지식에 대한 토론과 민주주의에 대한 성찰의 장소이며, 20세기 마지막 민중의 대학이자 21세기 최초의 백과사전이 되었다”.
이같이 지식의 시대라 일컬어지는 21세기의 서막을 여는 데 있어서, ‘모든 지식의 대학’을 계획하고 성공으로 이끌어 낸 사람이 바로 프랑스의 저명한 미학자 이브 미쇼(Yves Michaud)였다. 1989년부터 에콜 데 보자르 학장으로 괄목할 만한 정책을 펼치며 10년간 그 대학을 이끌었고, 현재 파리1대학 철학과 교수로 재직 중인 이브 미쇼는 당대의 대표적인 철학자이자 예술비평가로 주목받는 인물이다. ‘모든 지식의 대학’이 대단원의 막을 내린 후, 1년간 그는 동시대미술(contemporary art)의 현주소를 짚어내는 명쾌한 이론서를 집필했는데, 그것이 바로 이 책『기체 상태의 예술』이다.


우리시대 미술에 대한 이브 미쇼의 명쾌한 진단서
현대미술을 대상으로 비평작업을 하는 수많은 비평가의 글에서 이브 미쇼의 이름을 찾아보기란 어렵지 않다. 그것은 그만큼 이 시대의 미술에 대한 그의 예리한 통찰이 넓은 스펙트럼을 형성하며 폭넓은 공감을 얻고 있다는 증거이겠다.
사실 예술은 시대에 따라 부단히 변신을 거듭해왔다. 어제의 예술과 오늘의 예술은 분명 다른 모습으로 우리를 에워싸고 있다. 당대 비평의 최전선에 서 있는 이브 미쇼. 그는 이 책에서 한 가지 중요한 진단을 내린다. 20세기의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의 시대를 거쳐 포스트-포스트모더니즘의 예술은, 이제 기체 상태가 되어 우리 생활 곳곳에 공기처럼 퍼져 있다는 것이다. 
시대의 예술은, 지난 세기까지의 예술처럼 경건한 태도로 예술의 아우라를 감상하는 것과는 전혀 차원이 다르다고 한다. 예술을 ‘경험’하게 할 뿐 아니라, 보존되기 힘든 형태로 작품이 만들어짐으로써 결국 예술의 ‘개념’만이 남는다는 것이다. 또한 과거에는 캔버스에 유채라든지 청동이나 돌로 깎인 조각 등 일상적인 소재와 확연히 다른 예술 재료로 작업을 했지만, 마르셀 뒤샹의 레디메이드 이후에는 일상적인 오브제와 예술의 경계가 사라지게 되었다. 그래서 오늘날의 예술은 예술가가 선택하기 이전부터, 이미 일상생활 곳곳에 존재하고 있다. 마치 공기처럼 널리 퍼진 채로. 이렇듯 이브 미쇼는 미를 열렬히 숭배하고, 미학이 승리를 구가하는 오늘날 ‘기체 상태’.로 남게 된 예술의 본질을 파헤쳐간다.

현대미술을 넘어, 동시대 미술에 대해 논하다!
이브 미쇼는 논의를 하기에 앞서, 용어에 대한 분석부터 명확히 한다. 즉, ‘modern art’와 ‘contemporary art’를 구분해 사용한다(이 책에서는 전자를 ‘현대미술’로, 후자를 ‘동시대미술’로 옮겼다).
이브 미쇼는 현대미술의 시기를 “세잔의 영향을 받아 입체주의가 태동하는 1905~1906년부터, 1960년대에 등장한 20세기 최후의 전위 미술들이 쇠퇴하고 소멸하는 1975~1978년까지”라고 규정짓고, 그 이후를 동시대미술의 시대로 구분하고 있다.
현대미술 이전에도 그러했지만, 특히 현대미술은 거대담론을 주창하고 사회나 예술의 변혁을 선언하며 그룹을 지어 운동을 벌였다. 반면 동시대미술은 예술가들이 대개 개별적으로 작업을 하는 대신, 하나의 주의(ism)를 주창하는 그룹이나 모임은 사라진 것이 특징이다. 또 개인의 내면을 담거나, 대중사회의 일면을 반영하기도 했으며, 여러 문화를 복합적으로 표현해냈다. 이브 미쇼는 이러한 특징이 다다이즘의 정신에서 비롯되었다고 말한다. 그는 반(反)운동을 표방한 다다의 정신이 오늘날에는 동시대미술의 중요한 특질로 실현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동시대미술은 형태상에서도 물질로 보존되지 않는 일시적 형태로 만들어짐으로써, 개념만 남아 기록된다. 그래서 “이제 대(大)예술(Grand Art)이나 대작은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사실상 미학이 승리를 거두는 새로운 구조 속으로 진입한 것”이라고 천명한다.
동시대미술의 특성에 대해 진단하면서 이브 미쇼는 “여전히 회화와 조각으로 대변되는 기존의 미술은 겉모습만 변한 게 아니라, 참으로 전혀 다른 것이 되어버렸다”고 한다. 그동안 우리가 생각하던 방식이나 미술사적 구분법, 용어 등에 의지해서는 동시대미술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참으로 전혀 다른” 예술이 된 이상, 새로운 관점에서 새로운 시각으로 예술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처방전을 제시한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그만큼 예술로부터 멀어져버린 것은 아니다. 사실 예술적인 것은 엄청나게 많이, 곳곳에, 심지어 너무 많이 널려 있다.” 동시대미술의 모태를 기존의 미술에 두기는 어렵다. 동시대미술은 현대사회, 즉 대중매체가 확산되고 과학이 발달하고 관광이 생활화된 사회를 태반으로 태어났다고 보는 게 더 정확하다. 그는 이전과 달라진 예술가상이나 광고나 영화, 사진 등과 상호교류 관계에 놓인 동시대예술을 예로 들면서 이러한 변화를 흥미롭게 설명한다.


(용어설명)

*민족학 民族學 - 여러 민족의 문화를 비교·검토·연구함으로써 민족 생활의 생성·발전·본질을 밝히려는 학문.
*민족지학 民族誌學 - 민족학 연구와 관련된 자료를 수집·기록하는 학문. 주로 미개한 민족의 생활 양상을 조사하여 인류 문화를 구명하는 자료로 이용한다.
*게토 [ghetto] - 중세 이후의 유럽 각 지역에서 유대인을 강제 격리하기 위해 설정한 유대인 거주지역.
*레디메이드 [ready-made] - '기성품의 미술작품'이라는 의미이며 M.뒤샹이 처음으로 창조한 미술 개념.
일찍이 큐비즘(입체파) 시대에 뒤샹은 도기로 된 변기(便器)에 ‘레디메이드’란 제목을 붙여 전람회에 출품함으로써 이 명칭이 일반화되었다. 뒤샹에 의하면 레디메이드, 즉 기성품을 그 일상적인 환경이나 장소에서 옮겨놓으면 본래의 목적성을 상실하고 단순히 사물 그 자체의 무의미성 만이 남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브라크나 피카소, 또는 쉬르리얼리즘(초현실주의) 작가들이 바닷가의 조약돌이나 짐승의 뼈 등을 주워 오브제(objet)로 한 방법과 상통하는 것으로 미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나타내는 것이다. 미에 대한 이러한 개념은 전후 유럽 미술, 특히 팝 아트 계열의 작가들과 누보레알리슴(nouveau réalisme) 및 개념미술 작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

*파리마치 [Paris-Match] - 프랑스의 대표적인 그래프 주간 잡지.
제2차 세계대전 후인 1949년 3월에 창간되었는데, 신선하고 풍부한 내용, 세련된 체재로 프랑스 최대의 발행부수를 가진 대중지로 성장하였다. 가벼운 읽을거리와 사진·패션 등을 중심으로 한 내용이 광범한 독자층을 잡고 있어, 광고매체로서도 가장 유력하다. 《피가로 Le Figaro》는 그 자매지인데, 도서출판을 포함하여 신디케이트를 형성하고 있다. 발행부수는 1970년 129만 부였으나 1983년에는 91만 부까지 점차 줄었는데, 경영난 돌파책으로 판형을 줄이는 등 대책을 강구한 결과 옛날의 명성을 회복하였다.

*정치 [政治, politics] - 통치와 지배, 이에 대한 복종 ·협력 ·저항 등의 사회적 활동의 총칭.

학자에 따라 다양한 견해가 있으나, 그 주요 논점은 다음과 같다.

⑴ 사회생활에서 일어나는 필연적인 대립·분쟁은 조정되고 통일적인 질서가 유지되어야 한다. 국가라고 하는 공동생활의 틀 속에서 단순히 개개인의 풍습이나 도덕 등의 자율적인 규범만으로 유지되지 않는 질서를 국가권력을 배경으로 법과 그 밖의 방법을 동원하여 유지시키는 작용을 정치라고 보는 견해이다. 물론 이러한 견해도 위로부터의 통치만을 정치로 보지 않고, 아래로부터의 항쟁 및 그 밖의 활동도 정치라고 본다. 다만 여기서는 국가를 중심으로 정치를 파악하는 점이 특색이라 할 수 있다.
⑵ 이에 반하여 정치는 국가만으로 한정되는 인간활동뿐만 아니라 모든 인간생활의 제(諸)형태, 이를테면 회사·노동조합·교회·학교·가정 등 어디에서나 발생되는 이해관계의 대립이나 의견의 차이를 조정해 나가는 통제의 작용도 모두 포함한다는 견해가 있다. 미국 정치학자들의 대부분은 이 관계를 거번먼트(government)라 하여 국가는 공적인 거번먼트인 데 대하여 그 밖의 것은 사적인 거번먼트라고 설명하고 있다.
⑶ 정치를 모든 대립을 조정하고 통일적인 질서를 유지시키는 작용으로 보는 점에서는 ⑴·⑵와 같은 입장을 취하면서도 특히 사회적·경제적·이데올로기적 대립의 항쟁관계 속에서 상대방을 복종시키고 스스로의 주장을 관철시키는 활동을 정치의 본질로 보는 견해가 있다. 그것에 따르면 자기편에게는 가장 우호적인 단결과 협력을 제공하고 상대편에게는 적대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이 곧 정치의 형태이며, 정치는 스스로의 의지에 상대방을 복종시키고 상대방을 통제하며 자신이 필요로 하는 질서를 유지·강화하는 작용이다. 따라서 이 견해는 자연히 국가를 중심으로 정치를 보는 경향이 강하다고 할 수 있다.
⑷ 한편, 마르크스주의는 정치를 계급적 시각에서 고찰하고 있다. 국가는 특정계급의 이익을 보호하는 권력기관이며, 국가의 통치는 적대적인 여러 계급의 저항을 통제하고 스스로의 권익에 필요한 질서를 유지·강화하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피지배계급에 속하는 모든 대중은 자신의 권리와 이익을 수호하기 위하여 부단히 저항하고 적극적으로 요구하며 그것을 실현시키기 위하여 다양하고도 조직적인 노력을 경주한다. 이러한 지배와 저항을 본질로 하는 것이 바로 정치라고 규정하고 있다.


*"시를 그림처럼 여기고, 그림은 시를 닮게 하라".."시 가운데 그림있고, 그림가운데 시가 있다."
-호라티우스가 한 말. 독특한 시적 심미관. 시서화와 같은 시와 회화를 동일시 하려는 관념적인 경향으로 서양문화권에서 시창작의 지침으로 사용된말..

*파라고네- 예술장르의 우위 논쟁
(음악음 연주가 끝나기 무서벡 사라져 버리지만, 미술작품은 누가 불태우거나 망가뜨리지 않는한 고별하는 법이 없으므로 오래간다는 이점이 있다. 그러나 미술작품은 언제보아도 항상 그대로니까 별반 새로울 것이 없는 반면, 음악은 연주자나 지휘자의 관점에 따라 늘 다른 해석을 향유할 수 있다는 점이 특병한 장점으로 꼽힌다...귀보다는 눈이 더 귀한 감각이므로 음악이 미술에게 언니라고 불러야한다는 식의 사소한 논쟁)

*interactive - a. 서로 작용하는[영향을 미치는];【컴퓨터】 대화식의;【통신】 쌍방향의

*물신 [物神] [명사]신령이 깃들어 있다고 생각하여 숭배하는 동·식물이나 물건.

*파피에콜레 papiers collés (요약) 회화기법의 하나로 그림물감 이외의 다른 소재를 화면에 풀로 붙여서 회화적 효과를 얻는 표현형식. 사용되는 소재는 신문지 ·악보 ·모래 ·천 ·조각 ·철사 ·새털 ·보석 ·유리 등 수없이 많다. 이것은 마티에르(材質感)의 확대를 의도한 이미지의 연쇄반응을 호소하는 지향적인 실험이다. 그러나 물질의 동존성(同存性)에 결함이 있음을 알게 되자 수공예적으로 그림물감을 써서 화면에 표본도적(標本圖的)인 묘법으로 그 부분을 나타낸 작품도 만들어졌다. 이것은 17세기 네덜란드에서 시작된 트롱프뢰유의 화법을 채택한 것으로 1920년 다다의 전시회나 초현실주의 화가들에 의해 채용되었으며 에른스트가 창안한 콜라주기법에서 집약되었다.

*그린버그 [Joseph Harold Greenberg, 1915.5.28~2001.5.7]
미국의 인류학자 및 언어학자로 본래 아프리카의 언어·문화의 연구가 전문이지만 최근에는 통계적 언어유형론의 제창자로 알려져 있다. 주요 저서로 《아프리카 언어》등이 있다.

*로젠버그 [Harold Rosenberg, 1906.2.2~1978.7.11]
미국의 미술비평가. 제2차 세계대전 직후 미국에서 일어난 추상회화를 '액션 페인팅'이라고 명명하고 이를 ‘그림이 아닌 사건’을 화면상에 표출시켰다는 다이내믹한 이론으로 분석한 비평가로 유명하다. 생생한 현재와 액션이 미국미술을 유럽미술의 전통에서 해방시켰다고 주장했다.

*현대미술의 상실(책소개)
1975년 미국현대미술 최전성기에 발표되어 미국 미술계에 커다란 파문을 던졌던 문제작. 저자 톰 울프는 모더니즘 이론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미술은 더 이상 눈에 보이는 것에 얽매이지 않고, 색과 형태만을 표현하도록 진화한다'는 주장을 정면에서 공격한다. 그에 따르면 소수의 '문화적인' 부르주아들이 다른 '속물' 부르주아들과 달라 보이기 위한 욕구를 채워 주는 것이 아방가르드의 상징인 현대 추상 미술이며, 현대 미술가는 한발은 예술가 동네에, 한발은 후원가들의 동네에 각각 걸쳐 놓고 있는 고도의 처세가이다.
따라서 더이상 그림 자체는 중요하지 않고 무언가 의미있는 듯한, 그러나 아무도 이해할 수 없는 미술이론이 전면에 부상했으며, 이 새로운 이론에 얼마나 잘 부합되는 그림을 그리느냐가 화가의 성공 여부를 결정짓게 되었다. 모더니즘 비평의 총아 그린버그나 로젠버그가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된 것도 다 이에 따른 것. '태초에 말씀(이론)이 있었다' 가 현대 추상 미술계를 묘사하는 가장 적절한 문장이 된 셈이다.
25년이 지난 현재, 특히 매우 다양한 현대미술운동이 혼재하고 있는 이 시점에서 그의 주장의 맞고 그름을 논한다는 것은 크게 의미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은연중에 서양미술사의 절대진리처럼 여겨지는 모더니즘 미술사의 계보를 한번쯤 거꾸로 생각해 보는 것은 현대 미술을 보는 시각을 훌쩍 넓혀 줄 것임에 틀림없다. 여기에 더해 톰 울프의 문체와 위트는 풍자적인 비평서의 모범을 보여줄 만큼 빼어나기에 처음부터 끝까지 유쾌하게, 한달음에 읽어내려갈 수 있다.현대미술은 '어렵다'거나 '이론으로 무장되어 있지 않으면 제대로 감상할 수가 없다'고 한다. 그것은 현대미술에 복무하는 작가들이 가슴이 아닌 머리로 작업하기 때문이기도 하거니와 사람들이 현대미술의 역사적인 맥락에 무지하기 때문이다. 『현대미술의 상실』은 이런 관람자들을 위한 유익한 길라잡이로 손색이 없다. 저널리스트 특유의 현장감 넘치는 입담과 사태의 핵심을 간파해내는 명쾌한 통찰력, 그리고 위트 넘치는 문체는 독서의 재미를 더해준다.

아는 것이 보는 것이다!
현대미술이 지닌 맹점을 누구보다 먼저 날카롭게 짚어낸, 톰 울프의 이 책은 1945년부터 75년까지 미국 현대미술의 동향을 다루고 있다. 지은이는 미국 사회의 예리한 관찰자이자 저널리스트로서 현장에서 체험한 현대미술의 흐름을 생중계하듯이 일목요연하게 들려준다.
지은이는 책머리에서 현대미술을 '보는 것이 곧 아는 것'이 아니라 '아는 것이 곧 보는 것'라는 관점으로 풀어간다.이른바 모더니즘의 세례를 받은 현대미술은 인상파 이전의 미술처럼 그림 속에 이야기가 들어 있어서 눈으로 보는 것만으로 내용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현대미술은 눈으로 봐서는 알 수가 없다. 타 장르는 차치하고 회화만 하더라도 회화가 자기만의 고유성을 확보하기 위해 이제까지와는 전혀 다른 독자적인 길을 걷는다. 회화를 문학적인 요소(이야기)와 3차원의 환형을 불러일으키는 조각적 요소(입체감)의 결합으로 보고 이들 각 요소를 분리하여, 마침내 순순하게 회화적인 것(평면성)만을 추구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캔버스는 가식적으로 감상 가능한 이미지가 표백된 완전한 평면으로 변하고 만다. 이는 한 시대의 담론을 생산하며 미술의 흐름을 좌우해온 미술평론가들의 '이론'을 화가들이 작품에서 그대로 실천한 결과였다. 이론이 곧 회화가 된 것이다. 이로써 미술 작품은, 뭔가를 알아야만 감상할 수 있는 이론의 시대가 열린다.

현대미술의 3대 지휘자 - 그린버그, 로젠버그, 스타인버그
지은이는 이렇게 히화가 변질되는 과정을 가까이서 지켜보면서 생생한 필치로 예리하게 추적한다. 여기에는 미국 현대미술이 태동하고 정착하기까지의 비하인드 스토리가 지은이의 예리한 통찰과 시니컬한 입담으로 흥미롭게 녹아 있다. 미술의 중심이 유럽에서 미국으로 넘어오기까지의 과정, 이론에 대한 화가들의 과도한 집착, 당시 뉴욕 소호거리의 화가들의 생활상, 이론가들을 중심으로 한 화가들의 모임, 잭슨 폴록 같은 무명의 화가가 평론가들의 지원사격에 힘입어 성공하기까지의 과정 등등. 당시 이론을 주도한 이들은 이른바 '버그 삼인방'. 그들은 추상 표현주의를 탄생시킨 클레멘트 그린버그, 액션 페인팅에 무게를 실어준 헤롤드 로젠버그, 그리고 팝아트의 이론적 토대를 마련해준 레오 스타인버그이다. 이들이 이론으로 미술계를 지휘하면 화가들은 그에 맞춰 일사불란하게 작품을 생산한 것이다.

이론에 의한, 이론을 위한, 이론의 시대
지은이는 그린버그나 로젠버그의 독특한 논증은 단순한 이론이 아니라 공리 또는 선험적인 명제로 인식하여, '말씀이 그려진 회화'라 단언한다. 또한 레오 스타인버그의 등장으로, 추상 표현주의가 끝나고 팝아트가 대두해도 "미술이론"자체는 또 다시 멋지고, 귀하고, 아름다운, '미술의 승리를 거둔다. 그런 과정이 팝아트를 거쳐 개념미술로 접어들 때, 이론은 더욱 기고만장해진다. 그래서 지은이는 이 책의 말미에서 기발한 예언도 서슴지 않는다. 한국 모더니즈 미술 계열의 교과서이는 다분히 냉소적인 진술이지만 당시의 상황을 이만큼 정확하게 지적한 예는 찾아보기 어렵다 이런 말씀의 시대가 우리나라에서도 7, 80년대의 모더니즘 계열 회화를 점화시켰고, 모더니즘 회화 관련 이론서가 흔치 않았던 시대에 이 책은 현대미술에 투신한 화가들의 교과서 역할을 한다. 지금 중견화가들의 이론적인 토대에는 톰 울프라는 이름과 이 책은 진한 흔적으로 남기고 있다. 80년대 이후 우리 미술의 상황이 이전과는 현저히 달라졌다고는 하나 미술학도들이 현대미술의 실체를 일목요연하게 공부하기에는 이만큼 작지만 알찬 길라잡이도 없다. [예스24 제공]


서양 미술사 -개략-

<<원시미술>>

오늘날 우리에게 알려진 미술작품들 중에서 가장 오랜 된것은 구석기 시대, 즉 지금으로부터 약 1만5천년전의 동굴에서 살았던 사람들에 의해 그려지고 조각된 것들이었다. 그들의 작품창작의 궁극적인 목적은 주술적인 것으로 사료된다. 창에 찔린 동물들을 보면서 동물보다 자신들의 우월감을 확인하고 공포심을 제거하여 자신있는 사냥을 하려 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또한 그들은 미술속의 형상은 현실적인 것과 똑같은 힘을 같는다고 믿었으므로 다산을 기원하는 빌렌도르프의 비너스(기원전 15,000~10,000 오스트리아)를 만들기도 하였다.

 <<고대미술>>

 1)이집트 미술 (B.C 3500-500)
기원전 5000년경에 이집트, 인도, 중국 등지에 흐르고 있는 나일, 티그리스, 유프라테스, 인더스, 황해등의 비옥한 유역에서 각기 거창한 문명이 싹트기 시작했다. 특히 이집트에서는 선사시대로부터 유사시대로의 생활양식의 전환이 놀라울 정도로 짧은 기간에 이루어졌다.
이집트인들의 삶과 죽음의 관계에 대한 관념없이 이집트 미술을 이해하기란 힘들다. 그들은 사람이 죽으면 그의 영혼은 사지의 육체를 떠나 따로 삶은 누린다고 믿었다. 이러한 고대 이집트인의 사고 덕택에 이집트의 미술은 초시간적, 영속적기능을 하게된다. 또한 죽은자를 위한 미술이므로 아름다움보다는 미술작품에 영원성을 담으려했다. 예로 파라오 왕이 죽은후에도 생전과 같은 절대권력의 소유와 승천을 돕기 위한 [피라미드]를 들수있다. 그리고 그들은 명확하고 완전한 묘사를 위해 특징적인 각도와 전형적인 상황을 묘사했는데, 주인은 종보다 큰 점, 좌상의 경우 두손은 무릎위에 놓는 점, 남성의 피부색이 여성보다 검은 점, 모든 인물이 어떤 기저선상에 놓이는 점 등이 예라 할 수 있다. 3000년간 지속된 이집트 미술은 비교적 정확한 부분묘사와 균형있는 신체비례를 보이는데, 이는 그들의 질서감각과 기하학적 규칙성을 보여준다.

 2)메소포타미아 미술
기원전 3500년경에서 3000년에 걸친 기간에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강을 낀 비옥한 땅에서 수메르인들의 메소포타미아 문명이 태동한다. 수메르의 도시국가는 모두가 신의 소유로서 신에 의해서 통치되고 있었다. 그래서 신을 대신하고 있는 신관이 모든 국가의 행정을 통치하고 있다. 이에 영향을 받은 메소포타미아 미술은 신전을 중심으로 한 생활상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수메르의 조각은 건축보다 많은 양의 작품을 아직까지 남기고 있는 데 그것이 바로 돌로된 소형 인물상군이다. 수메르의 조각가는 금속이나 나무를 재료로 하여 작품을 만드는 경우가 많았고 유연하고 부드러우며 사실적인 표현을 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 시기의 이집트 미술가와 비교하여 훨씬 규칙에 속박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3)그리스 미술 (B.C 7 - 4)
그리스 미술에서는 사물을 보는 시점이 이전의 왜곡된 방식이 아닌 올바른 방식으로 발전하여 이집트 미술에서 보이는 평면성에서 벗어나 공간감을 얻게 되었다. 공간감의 획득은 형상이나 인물 등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묘사하여 설득력 있게 전달할수 있도록 하였고, 이것을 그리스 미술의 서술적기능(Narrative function)이라 한다. 그리스 미술을 크게 전기, 후기 헬레니즘으로 나누어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전기 그리스미술 (B.C7 - 5)
정치적으로 안정되어 미술이 극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앞서 언급한 미술의 서술적기능이 태동한 시기이다. 또한 원시적인 신들에 관한 전설이나 신화에 대하여 의심을 품기 시작함으로서 사물의 본질에 대한 관심이 증대된 시기이다. 따라서 기하학, 자연과학, 철학등의 학문이 아울러 발전하게 되었다. 대표적인 미술로 도리아식 신전건축 양식으로 지어진 [파르테논 신전]을 들 수 있다.

후기 그리스미술 (B.C5-4)
페로폰네소스 전쟁에서 아테네가 패배하여 정치적 번영이 중단되었다. 그러나 미술가들의 자유를 바탕으로 한 다양성을 후기 그리스 미술의 특징으로 들 수 있으며 대표작품으로 갸날픈 기둥에, 곡선이 가미된 기둥머리를 지닌 이오니아 양식으로 건축된 [에렉테움 신전]을 들 수 있다.

헬레니즘 미술 (B.C4-A.D1)
알렉산더 제국하의 미술양식을 말한다. 소아시아와, 인도국경, 이집트까지 영토확장을 하였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동서방의 문화가 혼합되었고 제국의 위용을 과시하기 위해 화려하고 강한 인상을 주는 것이 특징이다. 예를 들어 이전의 기둥양식 보다 훨씬 강하고 화려한 인상의 코린트식 건축 양식을 들수 있다. 또한 조화와 균형보다는 제국의 위용에 걸맞는 강렬한 극적효과, 거칠고 인상적인 효과에 주력하였다. 격렬함과 긴장감으로 충만되어진 리시포스의 [라오콘]상은 이러한 특징을 잘 나타낸다. 대표작품으로 사모트라케섬의 [니케상], 밀로의 [비너스]를 들수 있다.

4) 로마 미술
그리스 패권을 둘러싼 알렉산더 대왕에 의한 헬레니즘 제국과 카르타고의 싸움이 치열할 무렵 이탈리아 반도에서는 작은 마을에서 출발한 로마 공화국이 그리스인들보다 정치력과 군사적으로 우세한 힘을 기르기 시작하여 마침내 그리스를 정복하기에 이른다. 로마인들의 그리스 세계정복은 평소 그리스 미술에 절대적 동경을 가지고 있던 로마인들에게 그리스의 미술을 단번에 접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고, 그들의 우수한 문화 유산을 바탕으로 로마인들은 국제적 성격을 띤 미술을 전파하게 된다. 그리스와 로마 미술이 매우 유사하게 보이는 것은 로마 시대때 활동하던 미술가들이 대부분 그리스 출신이던가 거기에서 훈련받은 사람들이었기 때문이고, 로마인들은 그리스 시대의 미술품을 복제하거나 수집하였다. 그러나 로마인들이 그리스 미술을 그대로 복제한 것만은 아니고 그들의 필요에 따라 그리스 형식을 변형하였다.  

5)비잔틴 미술
4세기로부터 5세기에 걸치는 동안 서로마보다는 동로마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에서의 미술이 상대적으로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하였다. 그리하여 정치적인 몰락을 겪은 서로마보다는 동로마에서, 6세기에 이르러 초기 그리스도교 미술은 콘스탄티노플에서 그 전성기를 누리게 되었는 데, 이를 비잔틴 미술이라고 부르고 있다.

<<<중세미술 MIDDLE (A.D 5c - A.D 15c)>>

중세는 초기 500년동안은 전쟁과 약탈, 혼란한 정치가 계속되는 일종의 암흑시기(Dark age)였다. 그리고 예술은 기독교 교리전달의 보조수단이라는 신(神) 중심의 인간관이 사회 전체를 지배하였으므로 예술에 있어서도 암흑시기였다. 중세는 초기미술과 로마네스크, 유비법 붕괴 이후의 고딕양식으로 분류된다.

1)중세초기
미술은 단지 문맹자들에게 신의 섭리와 교리를 전달하기 위한 보조수단이라는 생각이 사회 전체를 지배했다. 그들은 신(神)적이고, 영원하며 비가시적인 것을 가시적이고 감각적인 것으로 바꾸는 데 미술의 역할이 있다고 생각하였다.그리고 미술가의 재능은 신으로부터 부여 받은 것 이므로 당연히 신에게 바쳐져야 한다고 믿었으므로 이시기의 작품들은 대부분 익명으로 제작되었다. 그리고 뚜렷히 통일된 하나의 양식이 나타나지 않은 점도 특징이라 할 수 있다.

2) 로마네스크 미술
11세기 후반에 유럽전역에서 일어난 로마네스크 미술은 “교회의 승리”를 대표한다고 할 수 있다. 유럽 전역이 그리스도교로 개종하였으며 정치,경제,사회의 일반이 교회의 지배하에 들어가게 되었다. 고대 로마의 건축양식과 흡사한 교회가 많이 건축되었으며, 단단하고 육중한 모습의 석조건물로서 악으로부터 보호하는 전투적 교회의 모습을 하고 있다. 조각이나 회화는 중세초기에 비하여 비교적 사실적이고 자연스러우나 여전히 교리전달의 보조수단이므로 교회의 내부장식에 이용되었다.

3)고딕양식 (A.D13c-14c)
12C 말 프랑스 북부에서 발생한 미술양식이다. 유한한 인간이 무한한 신의 세계를 가시화 시킬수 없으므로 인간능력의 것을 충실히 나타내려는 시도(유비법의 붕괴)가 생기면서 원근법, 인체묘사, 형태등에 관심을 쏟아 이후 르네상스 발생의 초석이 된다. 로마네스크의 둥근 아치와는 달리 뾰족한 첨형아치가 특징이다. 또한 로마네스크 교회건축물과는 대비적으로 가느다란 석재기둥 및 유리(스테인드 글라스)등의 재료를 사용하여 내부가 밝고 넓어지게 된다. 대표적 건물로 프란체스코 교회를 들수있다. 유비법이 붕괴되었고 이후 르네상스의 초석이 된다. 건축물은 첨형아치와 스테인드 글라스가 사용되었다.

4) 르네상스 RENAISSANCE (A.D 1400 - A.D 1600)
르네상스는 부활(復活), 재생을 뜻하며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고대 그리스, 로마의 문화 번영을 꿈꾸며 시작되었다. 르네상스가 이탈리아에서 시작된 배경을 보면 첫번째, 이탈리아에선 귀족계급과 부유한 부르조아 계급 사이의 구분이 없어졌으며, 두번째, 이탈리아가 서유럽의 다른 어떤 지역보다도 고대 로마시대의 유적이 산재하는 등 고전시대에 친밀감을 가지고 있었으며, 세 번째, 도시의 자부심과 사유재산제가 잘 발달되어 예술에 대한 후원의 기회가 많았다는 것등이다. 중세 봉건영주, 귀족으로부터 벗어나 스스로의 권리와 능력을 자각한 시민계급의 등장은 현실세계에 대한 관심의 증대를 낳았고, 이는 중세를 지배하던 신중심의 시선을 인간중심으로 옮겨 놓았다. 그리고 피렌체의 메디치가 처럼 부를 축적한 상인계급이 새로운 지배계급으로 등장하여 미술의 새로운 후견인이 되었다.

초기 르네상스(Quatrocento, 1400년대)
현실적, 객관적 정확성에 치중하였다. 그러나 그림전체의 조화로운 구성에는 아직 소훌하였다. 화면속 대상 개체의 사실적인 묘사에만 주력하였으므로 개체는 날카롭고 명확한 윤곽선으로 도려지게 되었다. 격렬한 동세를 하고 있는 소재들은 고전작품에의 제재를 따온 것으로 파악된다. 보티첼리가 그린 [비너스의 탄생]을 보면 이러한 아직은 미숙한 르네상스의 미술의 특징을 잘 알수있다. 대표적인 작품으로 도나텔로(1386-?)<성지오르지오상>, 보티첼리<비너스의 탄생>을 들수 있다.

전성기 르네상스(Cirquecento, 1500년대)
이성적 규칙을 통한 객관적인 정확성과 조화와 균형이라는 미의 이념이 잘 구현된 황금기다. 다른 어떤 세기보다 많은 천재들이 나타났으며 가장 두각을 나타낸 레오나르도 다 빈치, 미켈란젤로이다.후기 르네상스 (Mannerism, 16c중엽부터 말) 전성기 르네상스 이후의 경향들을 이르는데 흔히 평가절하되어 온 경향이기도 하다. 즉 인위적이고 기교적인 성격이 강하고 형식적인 면이 많이 부각되어 있기 때문인데, 그것은 전대의 거장들의 기법을 모방했다고 간주되어 창조성에서 의심을 받았다. 전반적인 그림들에서 느겨지는 불안감, 신비감, 몽상적인 분위기, 기괴한 배경, 과정된 인체비례에서 시대정신의 한 면의 표출로 보기도 한다. 특히 파르미지아노(1503-1540), 틴토렛토(1518-1594), 코렛지오(1489-1534), 엘 그렛코등이 대표적인 매너리즘 작가로 꼽히고 있다.

그 대표적인 양식적 특징으로는 인체의 장신화, 차갑고 선명한 색조, 표면처리의 매끈함, 원근법의 과장, 비논리적인 공간배치 및 대가그림의 일부 차용 등을 들수 있다. 반면에 긍정적인 측면을 들수도 있다. 이전 르네상스 양식의 이성적 접근은 미의 이념을 구현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일 뿐이며, 새롭고 색다른 감성적 시도를 하였다는 점에서 매너리즘은 긍정적이다. 이러한 점은 이후 바로크 미술의 계기가 된다.대표적인 작품으로 파르미지아노의 <목이 긴 성모>와 엘 그레코의 <오르가스 백작의 매장>, 틴토레토의 <최후의 심판, 만찬>을 들수 있다. 후기 르네상스는 매너리즘으로 불리며 예술적 기교에 치우친 타성적 예술이다.

5) 바로크 BAROQUE(A.D 17C)
1600년부터 1750년 까지 이탈리아를 비롯한 유럽의 여러 카톨릭 국가에서, 르네상스의 이성적 규칙에 의한 지나친 속박에서 벗어나려는 시도로부터 발전한 미술양식을 뜻한다. 바로크는 포르투칼어의 '비뚤어진 진주'라는 뜻으로 르네상스가 지닌 단정하고 우아한 고전양식에 비해 장식이 지나치고 과장된 미술양식에 대한 경멸의 의미로 사용되었다. 혹은 르네상스가 지니고 있는 고전적인 균형, 조화의 세계에 비하여 유동적이고 강렬한 남성적인 감각이 강조되어 붙어진 이름이라 한다. 대표적인 작가와 작품으로 카라밧지오<야경>, 베르니니<다윗>, 루벤스<루시퍼스의 딸들의 능욕>, 램브란트<자화상> 등을 들 수 있다.

6) 프랑스식 고전주의 CLASSIC IN FRANCE (17C)
17세기 중엽의 프랑스는 유럽에서 가장 풍요롭고 강력한 국가였다. 그 결과 예술의 중심지는 이탈리아의 로마에서 파리로 옮겨오게 되었다. 데카르트의 합리론적 철학의 영향과 루이14세에 의한 정치적, 경제적 안정은 프랑스를 바로크의 물결에 휩쓸리지 않는 독자적인 양식을 갖도록 하였다. 대표적인 작가로 니콜라 푸생을 들수 있는데 그의 작품 <사비니 여인들>을 보게 되면, 감상보다는 지성에 호소하는 방식을 취하였기 때문에 이 작품에서 구도나 형태만이 강조되고, 색채는 아에 뒷전에 밀리게 되었다. 영웅적인 인물들은 일반화 되었으며, 동작은 조각처럼 굳어져 있다. 이들의 묘사는 헬레니즘 시대의 조각에서 빌려온 것이 증명되는 것이다.

7) 로코코 ROCOCO(A.D 18C)
로코코는 바로크 시대의 호방한 취향을 이어 받아 경박함 속에 표현되는 화려한 색채와 섬세한 장식, 건축의 유행을 말한다. 바로크 양식이 수정, 약화 된것이라 할 수 있다. 또한 로코코는 왕실예술이 아니라 귀족과 부르조아의 예술이다. 다시 말하자면, 유희와 쾌락의 추구에 몰두해 있던 루이14세 사후, 18세기 프랑스 사회의 귀족계급이 추구한, 사치스럽고 우아한 성격 및 유희적이고 변덕스러운 매력을, 그러나 동시에 부드럽고, 내면적인 성격을 가진 사교계 예술을 말하는 것이다. 귀족계급의 주거환경을 장식하기 위해 에로틱한 주제나 아늑함과 감미로움이 추구되었고 개인의 감성적 체험을 표출하는 소품위주로 제작되었다.

8) 신고전주의 NEO CLASSIC(A.D 18C말)
로코코와 후기 바로크에 반발하고 고전고대에 대한 새로운 관심과 함께 18세기 말부터 19세기 초에 걸쳐 프랑스를 중심으로 유럽 전역에 나타난 예술양식, 고대적인 모티브를 많이 사용하고 고고학적 정확성을 중시하며 합리주의적 미학에 바탕을 둔다. 신고전주의 예술은 형식의 정연한 통일과 조화, 표현의 명확성, 형식과 내용의 균형을 중요하게 여기며, 특히 미술에서는 엄격하고 균형잡힌 구도와 명확한 윤곽, 입체적인 형태의 완성등이 우선시 된다. 고대에 대한 관심은 18세기 중반에 이루어진 폼페이와 헤리클라네움, 파에스툼등의 고대건축의 발굴과 동방여행에 의한 그리스 문화의 재발견등이 계기가 되었으며 프랑스 혁명 전후 고대에 대한 동경이 사회 전반을 풍미하였다. 프랑스에서의 신고전주의 운동은 로코코 양식의 번잡스러움에 대한 일종의 반발, 루이 14세 시기의 그랜드 매너에 대한 향수, 푸생의 고전주의에 대한 회귀 등이 복합적으로 나타났다.

 

<<근대미술>>>

1) 낭만주의 (A.D 19C 초)
간단히 말해 감성적 분위기의 작품들을 발전시켜 나간 형태라 할수 있다. 현실적인 사건을 주제로 다루기도 하고 이성의 규칙과 속박에서 벗어나 느낌에 따른 재현을 하였기 때문에 낭만주의로 불린다. <메뒤사의 뗏목>(1819, 제리코)이라는 작품으로 대표되는 데 사선구두와 명암의 극적대비, 어둠 침침한 단색조를 보인다. 낭만주의는 전시대의 미술들이 버리지 못했던 현상이나 사물의 재현이라는 모방론적 입각을, 에술가의 감정이나 정서의 표현이라는 표현론으로 바꾸게데 그 의미가 있다. 따라서 예술이 다양해지는 계기가 된다.

2) 사실주의 (A.D 19C 중엽)
19C 이전까지는 자연주의로서 사실주의가 정의되어왔다. 그것은 성실하고 정확한 '자연의 모방' 더 나아가 그것의 '완벽한 이상화된 재현'으로서 사실주의 였다. 19C 이르러 사실주의는 새로운 의미를 부여받는다. 사실주의 등장 이전의 낭만주의는 그 개념적인 면에서 대조가 된다. 낭만주의는 '감정'이 중요하고 따라서 작가의 상상력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 결과 낭만주의 회화는 격정적이며 현실을 떠난 이상향을 쫒거나 이국적인 소재등에 깊은 관심을 회화로 표현한다. 표현에 있어서는 색채에 비중을 두고 화려하고 열정적인 화면을 구사한다. 현실을 떠난 상상력을 부추기는 소재는 따라서 시적이며 신화적인 주제를 취했다.
사실주의는 낭만정신에 전적인 반대 표명과 비판을 가한다. 특히 19C사실주의를 대표하는 쿠르베,도미에,밀레로 집약할 수 있는데, 이들의 공통관심사는 [현실을 보는 눈] 이라고 할 수 있다. 단적으로 쿠르베는 '천사를 보여주면 그리겠다'는 공언으로 사실주의의 개념을 대변하며 '상상력'으로 집약되는 낭만주의와는 대조를 보인다. 공간 구성에 있어서도, 소재자체가 대조적인데서 비롯되어서 [사르드나팔르의 죽음] [메뒤즈의 뗏목]은 내용 자체가 극적이며 등장인물 격정적인 자세의 불안할 정도의 공간배치가 나타난다. 반면 사실주의는 [돌깨는 사람] [만종]등에서 일하는 농민들의 정적인 모습과 그들의 현실공간을 재현해서 단순하고 차분한 구성을 나타낸다. 19C는 과학과 기술의 태동 이성주의의 팽배를 부른 계몽주의가 지배적이었다 특히 실증주의는 경험과 관찰에 입각한 과학적인 지식을 주장하였다.
이러한 정신은 시민정신에 평등사상을 고취하는데 역할하였고 민주사상에 이어지는 요소이기도 하다. 따라서 더 이상 고고한 가식적 주제가 아닌 평범한 삶의 세속성이 주제로 등장하는데 정신적인 역할을 했다.

3) 인상주의 IMPRESSIONISM (A.D 19C 말)

인상주의
인상주의는 빛의 변화에 따른 순간적인 형태의 변화 색의 변화를 포착하려는 미술양식을 말한다. 본대로 그린다는 인상주의 정신은 빛에 따라 순간적으로 변화하는 깊이 없는 사물의 인상을 그린 것이다. 태양광선의 미묘한 조화를 쫓기위해 이들은 야외에서 그림을 그렸으며 튜브형 물감과 접히는 이젤의 발명은 그들의 야외작업을 가능케 해주었다. 시시각각 변하는 태양광선은 빠른 필치와 붓놀림을 요구하고 빠레뜨에서 색을 섞기 보다는 직접 화폭에서 시각적인 착시효과를 노리며 순색을 이용한 색체분할법(필촉분할법)을 사용하였다. 이와 같은 인상주의가 출현하는데는 사진기의 출현에 따른 재현적인 사실적 묘사가 회화에서는 더 이상 의미가 없게 되었음을 입증해준다.
대표적인 작가인 모네의 [건초더미] [루앙 대성당][수련]등의 연작에 있어 작품의 대상이 되는 사물들은 태양광선을 위한 부차적인 소재인 것이다. 이 그림은 얼마간의 거리를 유지해야 윤곽과 형태가 드러난다. 화면의 구성도 삼각형구도나 소실점이 한두개로 축약되는 선원근법적이 아닌 대기원근법을 사용한다. 그 효과는 자칫 어수선해보이나 자연스럽고 우연한 느낌의 스냅사진과 같은 연출을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회화를 환영으로서 인식하기를 그만두고 '평면성'의 회화를 구축하고 있다.
또한 직관에 의한 뉘앙스 이미지의 연출은 곧 추상회화에 이르는 길을 제시한 것이라 할수 있겠다. 대표적인 작가로 마네, 모네, 르느와르, 드가, 로댕 등을 들 수 있다.

신인상주의(Neo impressionism)
신인상주의는 G.쇠라와 P.시냑으로 중심으로 행해진 점묘주의등의 이론과 수법 및 그 운동을 말한다. 그들은 광학이론과 색채학에 따른 과학적 이론에 기초한 색채분할을 구현하였다. 이들은 인상주의가 사용한 기법을 과학적으로 발전시키는 동시에 인상주의의 경험주의적 사실주의에 반발하였다. 인상주의가 본능적, 감각적이라면, 신인상주의는 과학적이며 분석적이라 할수 있다.

후기인상주의(Post impressionism)
인상주의의 단계를 거치면서도 그 양식의 한계에 만족하지 못하고 갖가지의 방향으로 인상주의를 넘어선 일군의화가들을 가리킨다. 인상주의에서 벗어나기 시작하면서 독자적으로 해결책을 추구하던 이들 작가군을 인상주의 이후의 세대라는 포괄적인 관점에서 `후기인상주의 화가'라는 명칭을 얻게된다. 이들은 이상주의가 지나치게 순간적인 시각세계에만 사로잡혀 있다고 믿었기에 보다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경험에 근거한 미술을 추구해야함을 표방했다. 세잔느, 고갱, 고흐로 대표된다

<<<현대미술>>>

1) 야수파 (A.D 20C 초)
20세기 초 프랑스에서 일어난 혁신적인 회화 운동으로 수년간 유사한 테크닉에 관심을 보였던 화가들에 의해 자연 발생적으로 형성된 미술운동이다. 이 운동은 순수 색채의 고양에 주력했다.이 새로운 화법은 1899년, 그룹에서 주도적 인물이었던 마티스에 의해 시작되었다.
야수파라는 명칭은 당시의 비평가 루이 복셀이 1905년 가을 마르케의 15세기풍의 청동조각을 가리켜 마치 "야수의 우리 속에 갇혀있는 도나텔로 같다"라고 평한데서 유래되었다. 이 운동의 동인은 귀스타프 모로의 문하생이었던 마티스, 마르케, 루오, 앙리 샤를르 망갱, 샤를르카무엥 그리고 장 퓌이등과 '샤토'로부터 블라맹크와 앙드레 드랭, 그리고 프리츠, 브라크, 뒤피의 그룹이 융합된 것이었으며 네덜란드 화가 반동겐도 참여 했다. 그들은 고호, 고갱, 신인상주의, 세잔느 등으로부터 영향을 받았다. 그 작품들의 특징은 강렬한 순수 색채에 있었으며 색채는 때로는 세잔느처럼 공간 구성에도 사용했지만 대부분 감정 및 장식적 효과를 위해 임의적으로 사용했다.

2) 입체파 (CUBISM A.D 1900 - 1914)
1900년부터 1914년까지 파리에서 일어났던 미술 혁신운동을 말한다.
1908년 마티스가 브라크의「에스타프 풍경」이란 연작을 평하면서 '조그만 입체 덩어리'라고 말한데서 유래되었다. 피카소가 「아비뇽의 아가씨들」을 발표함으로써 급격하게 발전한 이 운동은 일반적으로 세잔느풍의 입체주의, 분석적 입체주의, 종합적 입체주의로 나누어 고찰할 수 잇다. 입체파는 르네상스 이후 서양 회화의 전통인 원근법과 명암법, 그리고 다채로운 색채를 쓴 순간적인 현실 묘사를 지양하고, 야수파의 주정적(主情的) 인 표현을 폐기한 대신 시점(視點)을 복수화하여 색 도 녹색과 황토색만으로 한정 시켰으며, 자연의 여러 가지 형태를 기본적인 기하학적 형상으로 환원, 사물의 존재성을 이차원의 타블로로 구축적으로 재구성하고자 했다.피카소, 브라크등이 이 운동의 중심이었고 그 밖에 몽파르나스에서 화면에 밝은 색채와 다이나믹한 율동을 도입했던 F. 레제와 R. 들로네가 있고, 화면의 구성원리를 추구하여 추상예술의 길을 열었던 쿠프카와, 비용, 뒤샹등이 있다. 입체파는 제1차 세계대전의 발발로 종말을 맞았으나, 그 성과는 그 후의 미술, 디자인, 건축 등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3) 표현주의 (EXPRESSIONISM A.D 1911 - 1920)
표현주의는 야수파, 초기의 입체파, 인상주의, 그리고 의식적으로 자연의 모방을 거부한 다른 여러 화가들의 작업을 설명하기 위해 독일 비평가들이 1911년 처음으로 사용한 용어다. 1911년 마르크와 러시아 출신 칸딘스키는 단순한 기하학적 형태로 절대 순수를 표현하고자 함으로써 절대주의에 보다 가까이 다가서게 된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표현주의는 독일을 풍미하게 되었다. 청기사 그룹의 미술 가들은 더욱 이론적이고 추상적인 작품을 제작했고 후배 세대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4) 미래파 (FUTURISM)
미래파는 20세기 초 이탈리아에서 일어난 전위예술 운동을 일컫는다. 이 운동은 시인 필립포 마리네티가 효시인데, 마리네티는 기존의 낡은 예술을 모두 부정하고 기계 대에 어울리는 새로운 다이내믹한 미를 창조할 것을 주장하였다. 이에 자극되어 이듬해 2월 카를로 카라, 옴베르토 보치오니, 지노 세베리니, 루이지 루솔로, 쟈코모 발라의 5인의 화가가 연명으로 미래주의 화가 선언을 발표함으로써 미술운동으로 전개되었다. 1미래주의의 커다란 공적은 기계가 지닌 차가운 역동적인 아름다움을 조형 예술의 주제로까지 높였다는 것과 스피드감이나 운동을 표현하기 위해 회화에 시간의 요소들을 도입하려고 시도한데 있다. 이 유파가 뛰어난 조형작품을 낳았다고 할 수 없지만, 현대에 있어서 예술의 소재에 대해 새로운 문제제기를 한 의의는 크다.

5) 다다이즘 (DADAISM)
다다이즘은 1915~22년경 스위스, 독일, 프랑스등의 유럽과 미국에서 일어났던 반문명, 반합리적인 예술운동을 일컫는다. 제1차 세계대전을 낳게 했던 전통적인 문명을 부정하고 기성의 모든 사회적·도덕적 속박에서 정신을 해방, 개인의 진정한 근원적 욕구에 충실하고자 했던 것이 이 운동의 근본 정신이었다. 이 운동은 제1차 세계 대전 중 또는 전후에 세계로 급속히 확대되었다. 독일에서는 반전운동과 코뮤니즘에 결합된 베를린 다다가 1919년에 결성되었다. 미국에서는 1912년경부터 프랑스의 화가 마르셀 뒤샹이 만 레이와 함께 뉴욕의 화랑에서 전시회를 개최한 것을 계기로 뉴욕 다다라는 명칭이 붙게 되었다. 이들 작품의 공통적인 경향으로는 소위 레디메이드의 오브제 또는 움직이는 오브제, 콜라주 또는 앗 상블라주로 통하는 메르츠 빌트등이 시도되었던 점이다. 기계적, 성적인 이미지의 사용도 특색이다. 이들 수법은 다다의 강렬한 가치 부정적 관념과 함께 추상미술, 초현실주의 또는 제2차 세계대전 후 60년대 예술 등에도 강한 영향을 주었다.

6) 추상 표현주의 (ABSTACT EXPRESSIONISM )
일반적으로 1940년대와 50년대에 미국 화단을 지배했던 미국 회화사상 중요하고 영향력 있는 회화의 한 양식이다. 본래 추상 표현주의라는 용어는 칸딘스키의 초기 작품에 대해서 사용했던 말로, 미국의 평론가 알프레드 바가 1929년 미국에서 전시 중이던 칸딘스키의 초기작품에 대해 추상표현주의라는 말을 썼었다. 이 용어가 부적당하다는 견해도 있어서 비평가가 해롤드 고젠버그는 액션 페인팅이라는 말을 쓰기도 했다. 추상표현주의는 서구 근대미술의 복합적인 요소를 모두 포함하고 있다. 야수파, 표현주의, 다다이즘, 미래주의, 초현실주의로 이어지는 한 계보와 인상주의, 입체파, 기하학적 추상의 계보를 모두 받아들이고 있다. 전통적인 추상은 구상 회화의 경우처럼 인간, 사물, 풍경등을 표현 대상으로 삼지 않지만 삼각형이나 원 따위, 선이나 면에 의해 생성되는 형상을 갖는다는 점에서 동일하다. 이것은 현대 회화의 한 특성으로 화면은 원근감을 잃고 평면화되고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그라운드와 전경의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추상표현주의는 구상적이거나 추상적이거나 간에 지시성과 방향성을 거부한다.

7) 미니멀 아트 (MINIMAL ART)
1960년대 후반, 미국의 젊은 작가들이 최소한의 조형 수단으로 제작했던 회화나 조각을 가리킨다. 여기서 최소한이란 일루전의 극소화를 의미하는 것으로 이들은 회화의 감동, 마티에르의 풍부함 내지 자기 표현은 곧 예술이라는 신화를 기본으로 하는 종래의 예술 개념을 거부하는 입장에서 출발하고 있다. 이 경향의 대표적인 작가로는 엘즈워드 캘리, 프랭크 스텔라, 도널드 주드, 케네드 놀런드, 잭 영거맨, 래리 푼즈, 모리스 루이스 등을 들 수 있다.

8) 팝 아트 (POP ART)
1960년대 초기에 미국에서 발달하여 미국 화단을 지배했던 구상 회화의 한 경향이다. '팝'이라는 명칭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견해가 있지만 '포플러(popular)'의 약자로 보는 것이 유력하다. 통속적인 이미지, 다시 말해서 일상 생활에 범람하는 기성의 이미지에서 제재를 취했던 이 경향의 특징을 압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미국의 팝 아트는 1950년대 초기의 미국 화단을 휩쓸었던 추상표현주의에 대한 반동으로 일어났다. 미국의 팝 아트는 미국으로 상징되는 현대의 테크놀로지 문명에 대한 낙관주의를 기조로 하고 있다. 미국 팝 아트의 선배 작가로는 로버트 라우센버그와 재스퍼 존스를 들 수 있다. 미국의 팝 아트는 흔히 발견되는 일상적인 이미지나 물체를 미술 작품으로 전환시키는 것으로 목표로 하고 있 다.
팝 아트의 작가들은 일상의 이미지를 인용하는데 그치지 않고 그것을 기호나 기호체계로 사용하고 있다. 특히 앤디 워홀, 로히 리히텐스타인등은 사회가 익히 알고 있는 것들 - 예를 들면 마릴린 먼로의 얼굴, 미키 마우스의 이미지 -을 작품 속에 도입함으로써 기초 체계와 그들 자신의 테마를 겹쳐서 표현하고 있다.

9) 극사실주의 (HYPER REALISM)
1960년대 후반 미국에서 일어난 새로운 경향의 회화와 조각을 일컫는다.주로 일상적인 현실을 극히 생생하고 완벽하게 묘사하는 것으로 특징으로 한다.주관을 적극 배제하고 어디까지나 중립적 입장에서 사진과 같이 극명한 화면을 구성하는데 주로 의미없는 장소, 친구, 가족등이 대상으로 취급된다. 극사실주의는 본질적으로 미국적인 사실주의로, 특히 팝 아트의 강력한 영향 아래서 일어난 것이다. 따라서 팝 아트처럼 평상의 생활 즉 우리의 눈앞에 늘 있는 진부한 이미지의 세계를 반영하고 있다.
그러나 팝 아트와는 달리 그것은 극히 억제된 것으로써 아무런 코멘트도 없이 다만 그 세계를 현상 그대로 다룰 뿐이다. 대표적인 작가로 척 클로즈, 하워드 캐노비츠, 맬컴 몰리, 필립 펄 스타인, 시드니 틸림등의 작가가 있다.

10) 포스트모더니즘 (POSTMODERNISM)
포스트 모더니즘은 지난 20세기에 걸쳐 서구의 문화와 예술, 삶과 사고를 지배해온 모더니즘에 대한 반동으로서 60년대 중반부터 나타나기 시작했다. 후기 모더니즘은 하나의 통일된 사조나 운동은 아니지만, 그 중심적 동기는 모더니즘을 통해 수립된 고급 문화와 저급 문화의 엄격한 구분, 예술의 각 장르간의 폐쇄성에 대한 반발이다.
포스트 모던이라는 말을 처음으로 쓴 것은 건축 비평가들이었는데 이는 1960년대까지 유행하던 엄격한 사각형 형태의 양식에 대한 반발로 나온 건축물에 대해 쓴 말이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포스트 모던'적 경향이 분화되지 않은 과거의 예술을 소생시키려 한다는 점이다. 따라서 다른 시대, 다른 문화로부터 양식과 이미지를 차용하는 예술은 모두 '포스트 모던'의 자격을 얻는다. 포스트 모더니즘 미술가들의 또 다른 주된 특징은 모더니즘 문화와 사고 방식이 세워놓은 엄격한 지배의 틀을 거부하는데 있다. 포스트 모더니즘은 소통이 불가능한 정치, 문화, 전문화의 영역을 깨뜨리고, 삶과 문화의 경계를 무너뜨리기 위해 예술에 정치와 이데올로기를 끌여 들여 비판적으로 다룬다. 포스트 모더니즘은 아직은 확정된 일관성 있는 체계는 아니며 근본적인 변화에 대한 욕망에 의해 촉발된 회의주의적이고 비판적인 의식이다. 포스트 모더니스트들은 모더니즘의 폐허를 헤치고 나가며, 모더니즘의 부정이라는 가시적인 대안을 세우려 노력한다.

Posted by seonw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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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의분할:미학과정치
카테고리 인문 > 심리학 > 감정/학습심리 > 감정과정서
지은이 자크 랑시에르 (b, 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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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감성의 분할
1. 감성의 분할에 대하여 그리고 그것이 정치와 미학 사이에 정립하는 관계들에 대하여
2. 예술 체제들에 대하여 그리고 모더니티 개념의 결점에 대하여
3. 기계 예술들에 대하여 그리고 익명인들의 미학적, 과학적 지위 향상에 대하여
4. 역사는 허구라고 결론지어야 한다면, 허구의 양식들에 대하여
5. 예술에 대하여 그리고 노동에 대하여, 어떤 방식으로 예술 실천들이 다른 실천들에
관하여 예외에 속하는지, 그렇지 않은지

정치화된 예술의 동시적 이중 효과
역사적, 해석학적 방법론
보편성, 역사성, 평등
실정적 모순
정치화된 예술

슬라보예 지젝의 발문
랑시에르의 교훈



실정적 모순

 

Q1. 통합(몸)과 해체(영혼)사이의 모순이 근대 문학과 평등주의적 민주주의에 결정적이었던 이유는?

A1. 말은 몸 또는 몸 상태에 의해 보장될 때 통합되고 말을 지지하는 유일한 물질성이 제 자신의 것일 때 해체된다.

19세기 문학의 핵심은 통합과 해체의 모순에 있다. '사회적' 위계 붕괴와 함께 문학에서는 단어, 느낌, 위치 사이의 전통적 표현관계들도 붕괴되어 더 이상 고매하거나 저열한 주제나 단어는 없어진다. 단어의 배치는 문법의 질서에 의해 보장되지 않고 한없이 무차별적인 자유로운 단어의 평등주의로 변한다.

.발자크-발자크가 말하는 것은 사물 그 자체다. 운명의 진로는 한 개인에 의해 닳아 해진 옷(사물)에 씌어있다.

'만물은 말한다(노발리스)'-문학으로 해독, 전개, 재생시켜 글쓰기를 통해 새로운 몸을 세운다.

19세기에는 부정적으로, 민주주의/개인주의/프로테스탄티즘/혁명/사회적 붕괴 사이의 공상적 상관관계, 사회체의 민주주의적 해산(플라톤적 패러다임)이 만연해진다. 이로 인해 무차별적 평등의 지배와 공동체적 몸의 새로운 의미의 대립관계가 형성되며 문학은 이것이 표현되는 특권적 장소다. 발자크<마을사제>에서 이러한 긴장을 연구했다.(*생-시몽주의 등가물)

.말라르메- (동전, 신문 속 단어, 투표지의 표)단순한 평등을 보충할 상징주의적 경제를 시적 기능과 동일시하려고 노력했다.

.랭보- 오감 모두에 접근할 수 있는 새로운 언어로 표현된, 공동체에 대한 새로운 노래를 세공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새로운 몸을 구성하는데 사용된 '언어의 연금술'에는 부모 없는 글쓰기의 잡동사니(학교에서 가르치는 라티어로 된 책들, 시시한 반복구들, 철자 오류들이 있는 작은 성애(性愛) 서적들..) 만 있더라..

 

Q2. 19세기를 지배한 이러한 논리(통합과 해체의 모순)를 벗어나는 작가들이 있는가?

역사의 사회적 동력 또는 다수의 문학적, 예술적 실천들을 희생시켜 통합과 해체 사이의 결정적인 해결이 없는 변증법적 역사에 '부정변증법의 특권을 부여'하려 한다는 취지를 비판한 것에 대해 어떻게 대응하겠는가?

A2. 그것은 모두 '부정 볍증법'이라고 불리는 것에 달려있다. 내가 사유하려고 하는 것은 오히려 실정적 모순이다.

문학은 이러한 대립되는 두 가지 논리들(결과적으로 단어에 있어 어떤 보증도 가지지 않는 해체와 해산의 논리 Vs 글쓰기를 위해 새로운 몸을 정립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 해석학의 논리)사이의 긴장으로 구성된다. 이러한 긴장은 활기를 띄게 하는 작품의 원리다.

이러한 긴장을 벗어나는 작가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동일한 긴장이 이어지는 비-프랑스작가들이 있다.

․ 버지니아울프-우연성을 제거하는 어떤 말을 향한 긴장

․ 조이스-신화의 필연성 같은 언어의 필연성을 향한 상승과 동시에 끝없는 정형적 문구들의 커다란 층이 있음

․ 파베세-서민적, 소시민계급의 등장인물들의 존재방식에 잘 맞는 사실주의적 언어와 병렬적인 문체, 미니멀리즘의 한계에 있는 모더니즘이 있음.

 

Q3. 성서와 근대 문학의 어떤 모순적 이웃관계를 발견하는가.

A3. <단어들의 살(아우어바우-복음주의적 이야기의 수직성을 호메로스적 기술의 수평성에 대조시킴)>에 등장하는 방주에서 아우어바우의 소설적 사실주의의 본원적인 모델(위대한 신비로움에 사로잡힌 서민)인 베드로의 부인이 비극적 사건을 생생하게 묘사된다.

나는 이러한 생생한 묘사가 글쓰는 기계 같다고 주장하는 바다. 이것은 개인의 사건이라기보다는 (복음서의 다른 에피소드와 같이) 구약성서에서 예언되어진 것을 신약성서와 연결하는 문제다.

 

정치화된 예술

 

Q1. 몇몇 예외들을 제외하면 당신은 사회참여를 피한다.

당신은 (예술을 위한)예술과 사회적 현실 사이에서 사회참여를 전제로 삼는 잘못된 이분법 때문에 피하는가?

사회참여가 자발적인 것과 비자발적인 것, 개인과 사회 사이에 있어 지나치게 단순한 구별에 근거하기 때문인가?

A1. 미학이나 정치적 개념에서 중간개념이란 것은 무의미하다.

예술가는 자신의 인격을 통해 사회, 정치 문제에 참여한다고 할 수 있고 경우에 따라 정치적 투쟁에 공동으로 협력하는 자신의 글, 그림, 영화 등의 수단으로 참여한다. 하지만 예술가의 ‘예술’이 참여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미학이 제 자신의 정치, 또는 스스로 메타-정치(사회적 현실이라는 진리로부터 권리와 대의제도라는 의심스러운 허위들을 분리시키는 거리에 대한 비판)를 갖는다는 것이다. 예술작품은 조형적, 서술적, 글쓰기의 가능성들로 등록되는 객관적 정치들의 조합으로 만들어진다. 조정원리에 따라 어느 일정한 방법들이 다른 방법들 대신 선택되게 된다. 여기서 문제는 주제를 표현하는데 조정은 미학적 예술체제가 이미 이의를 제기했던 재현적전통의 원리라는 것이다. 그것은 미학적 가치와 정치적 가치 사이의 일치를 정립하기 위한 기준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조정의) 선택들만 있을 뿐이다.

도스패소스-해체된 현실, 딕스그로츠 - 인간적, 비인간적현실의 재현으로 유희함.

시미노<디어헌터>- 전쟁에 대한, 전쟁에 맞서는 투쟁에 대한 조롱의 메시지.

 

레미제라블- 등장인물에 신화적 차원을 주는 근대 서사시 형태의 사회적인 이야기..

문제는 미학의 정치와 정치의 미학사이의 알맞은 상관과계를 정립하기 위한 기준이 없다는 것이다.

어떤 방식으로든 정치는 제 미학이 있고 미학은 제 정치가 있다.

 

Q2. 이는 예술작품들의 정치적 효과에 관한 판단이 항상 그 사회나 역사적 상황에 고정된다는 것을 말하는가?

그러면 당신이 앞서 제안한 역사의 범위를 넘어서는 관점이 없는 것처럼 예술적 형태와 정치적 의미 사이의 일정한 연결을 정립하는 일반 법칙은 없는가?

A2. 소설, 영화, 조형작업에서 예술의 정치화를 끌어내는 것이 얼마든지 가능하다. ‘정치화된’ 예술의 원형적 형태인 브레이트의 희곡> 정치적 교수법형태들과 예술적 모더니즘 형태들 사이의 극단적으로 복합적이고 교묘한 평형상태의 토대위에 구성된다.


Posted by seonw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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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현

동네이야기/논현 / 2011. 2. 21. 16:50

장점: 총각네 야채가게,

단점: 지하철 세번 갈아타는동안, 자칫 자리가 나서 앉았다간 환승역을 지나칠수있으므로 자리가 나도 앉을수 없다. 젠장-

없어야할거: 다단계,

있어야할거: 빵집, 맛집,

좋은사람: 큐브, 

나쁜사람: 다단계,

모든것: 유일하게 강남으로 출근할 수 있었던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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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점: 정독도서관과 아직 그래도 갠찮은 전시장이 잘 버텨주고 있어서 다행이다.
여기에 가야지만 계절을 느낄수 있다.

단점: 뒷풀이 횟수가 너무 적다.

없어야할거: 어려운 말들,

있어야할거: 리더, 괴변론가, 친구들

좋은사람: 지금 스터디에서 만나고 있는 사람들

나쁜사람:

모든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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